일제강점기 ‘古都’의 고적조사 - 초기 고적조사를 중심으로 -
The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acncient capital in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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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많은 유적들이 조사되었는데, 특히 경주, 평양 등의 古都에 집중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고적조사 초기부터 경주와 평양 지역은 지속적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이후의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를 평가하는 연구 역시 주로 경주, 평양, 부여 등의 고적조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고적조사의 현황을 본다면 식민지 조선의 모든 古都에 대해 지속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경주, 평양을 제외한 다른 古都는 고적조사 초기에 단편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일제강점기 전 시기로 본다면 오히려 조사가 미진한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각 古都에 대해서는 조사의 목적 역시 서로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어 평양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조사는 낙랑군의 문화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경주의 조사는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설 등 일본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과 더불어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의 목적은 고적조사 초기부터 규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초기 고적조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각 古都에 대한 고적조사의 집중도 혹은 목적 등이 정립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1916년 이전 즉 초기 고적조사에서 古都에 대해 어떠한 조사가 있었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古都의 의미와 동시기 일본에서는 古都에 대한 조사가 어떠했는지 역시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古都라고 하여도 그 조사의 목적은 서로 동일하지 않았으며, 그 어느 조사도 한반도의 역사를 구명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bstract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many remains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were investigated through different institutional devices. In particular, there is perception that they were concentrated on ancient capitals such as Gyeongju and Pyeongyang. The reason is that from the early period of old remains during Japan's colonial rule, Gyeongju and Pyeongyang were continuously included in the subjects of investigation and in addition, research evaluating investigation of old remains during Japan's colonial rule as well dealt with investigation of old remains in Gyeongju, Pyeongyang, and Buyeo. However, to look into the current status of archaeological survey of old remains at the time, not all ancient capitals of Korea under Japanese rule were continuously investigated. The other ancient capitals except for Gyeongju and Pyeongyang were fragmentarily investigat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investigation of old remains and then only specific remains well known to the public were investigated. Rather, there were cases with insufficient archaeological survey over the whole period of Japan's colonial rule. In addition, the purpose of investigation on each ancient capital is not the same. For example, in the case of Pyeongyang, continuous investigation over the entire period of Japan's colonial rule was to identify culture of Nanglang commandery. Investigation on Gyeongju was to examine cultural relationship with Japan such as Im-na Japanese Headquarters and the aim to develop it as a tourist attraction accounted for a great portion as well. The purposes of such archaeological survey were not prescribed from the early period of investigation. Through early process of investigating old remains, the concentrativeness or purpose of investigation on each ancient capital were established. This paper reviewed which archaeological surveys there were on ancient capitals before the year of 1916, in other words, early period of archaeological survey on ancient capitals. To this end, the meaning of ancient capitals and how investigation on ancient capitals was in Japan during the same period were examined. Resultantly, the purposes of archaeological survey on ancient capitals were not the same and no investigation was to clarify the history of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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