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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石器時代’의 조사와 인식

The survey and understanding of the ‘Stone Age’ in Japanese Occup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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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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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고적 조사는 주로 고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대적으로 선사시대(석기시대)의 조사는 극히 적은 비중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의 선사시대 조사는 신석기시대와 무문토기시대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선사시대 자체보다는 금석병용기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는 점, 그리고 명확한 발굴이 이루어진 유적의 수가 극히 적기에자료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 선사고고학의 연구사 정리에 있어서도많이 다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실시된 官制調査에서 극히 적은 비중만을 차지했던 석기시대의 고고학적 조사를 담당하고 그 인식을 정립한 이는 鳥居龍蔵과藤田亮策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들의 석기시대 유적에 대한 조사와 그 인식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그들의 석기시대 연구는 학문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의논리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鳥居龍蔵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 속에서 ‘固有日本人’을주장하고 이는 곧 ‘日鮮同祖論’의 고고학적 증거로 이용된다. 藤田亮策은 鳥居龍蔵의 석기시대 인식을 대부분 따르고 있으나 한반도와 일본과의 관계보다는 한반도내의 외부 유입문화의 계통을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식은 금석병용기의 설정으로이어지며 이는 타율성론의 근거로 사용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의 고고학에 대한검토는 한국고고학의 성립과 발전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작업일 것이다.

Abstract

The Historical remains survey in Japanese Occupation Period was mainly ancient burial mounds, relatively survey of prehistoric remains was not many. From many kinds point, the survey of prehistoric period(The stone Age) of those days was not regarded as part of Korean archaeology. 鳥居龍蔵(Torii Ryuzo) and 藤田亮策(Huzita Ryosaku) were the men who took full charge of survey and have formed understanding of prehistoric period in Korean archaeology in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examination of the prehistoric remains survey and understanding of prehistoric period. Their study of prehistoric period did not remain in academic area. Their understanding of prehistoric period was utilized of Imperialism logic. 鳥居龍蔵(Torii Ryuzo) insisted on ‘固有日本人(Native Japanese)’ and that was used of archaeological evidence of ‘日鮮同祖論(Nitsendousoron)’. 藤田亮策(Huzita Ryosaku) insisted on ‘金石倂用期(Kinsekiheiyouki)’ and that was utilized of ‘他律性論(The theory of heteronomy)’. To understand of archaeological survey in Japanese Occupation Period will be based in understanding of the foramation process of archaeology of Korea. Key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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