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경의 伸寃에 대한 考察 -顧養謙의 일본 책봉 奏請 요구와 관련하여-
Research on the Rehabilitation of Choi Young Kyung - In connection with Kyung Go Yang Gyum's Request to Chosun asking appointment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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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의 목적은 최영경의 伸寃이 왜 이례적으로 빠른 시기에 이루어졌는지 고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1594년에 있었던 고양겸의 일본 책봉 주청 요구와 관련하여 최영경의 伸寃 과정을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최영경의 伸寃은 조선의 당시 국내적, 대외적 상황이 복잡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明과 일본의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明의 경략 고양겸은 일본을 책봉시키기 위해 조선에 일본 책봉 주청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선조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선조는 최영경을 伸寃해 줌으로써 북인들과 손을 잡았다. 이는 고양겸의 요구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유성룡과 성혼 등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최영경의 伸寃이 이루어지면서 북인들은 본격적으로 정계에 복귀할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반면 서인들은 明・日 교섭과 관련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혼이 유성룡과 함께 적극적으로 고양겸의 의견을 수용할 것을 주장한 결과 이후 조선 조정에서 대외 교섭과 관련하여 북인보다 강경한 입장을 대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영경의 伸寃과 고양겸의 일본 책봉 주청 문제는 결국 정유재란 이후 소북 정권의 탄생에 복선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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