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조일관계와 右京圖書 교섭
Joseon-Japan Relationship and negotiation of Wookyong-Doseo in the lat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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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동아시아 정세가 안정되는 가운데 조선이 기유약조 체결 이후 누적되어온 조일관계의 현안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분위기 속에서 右京圖書 교섭을 중심으로 조선의 달라진 대응 양상을 고찰하는 데 있다. 17세기 후반은 청이 명의 지배영역을 완전하게 확보하면서 조선에 대한 감시와 압박이 완화되었던 시기로, 이전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진 조선은 대일외교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전환해 나갔다. 1683년 대마도가 도주 宗義眞의 아들 右京의 承嫡을 계기로 右京圖書를 요청한 데에 대하여 조선은 이전에 발급했던 彦滿圖書 반납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右京圖書 발급을 거절하였다. 이에 대마도는 右京圖書를 얻기 위해 재판차왜를 연속 파견하고, 여러 가지 사안들을 제기하며 장기간 왜관에 체류하면서 조선을 압박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국교 재개 이후 대마도가 지속해 왔던,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며 조선을 압박하는 전형적인 교섭 방식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도서 발급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하며 오히려 재판차왜의 체류 일수를 제한하고, 중첩하여 도항할 때에는 日供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단호하게 대응해 나갔다. 1687년 재판차왜 平成辰이 왜관에 머무는 상황에서 새로운 재판 平成尙이 나오자, 조선은 平成辰에게는 일공을 중단하고 平成尙에게는 접대 불허라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였다. 이후에도 체류일수를 넘기는 재판차왜에 대한 접대를 중지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조선은 彦滿圖書의 반납을 강하게 요구하며 기존의 입장을 더욱 관철시켰다. 그러나 1692년 右京이 도주가 되면서 대마도가 더 이상 右京圖書를 요청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면서 도서 교섭은 종결되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이 주장하였던 彦滿圖書의 반납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10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右京圖書 교섭을 통해 조선은 대마도에 대해 도서 규정을 확인시키는 한편 대마도가 그동안 보여왔던 불합리한 교섭관행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나아가 조선은 대일외교자세의 변화와 의지를 대마도에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변화는 이후 조일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모멘텀이 되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 different aspects of Joseon’s response focused on the negotiation of Ukyong-Doseo while Joseon was actively resolving issues between Joseon and Japan after Kiyu-treatment in the stable situation of East Asia.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Joseon changed the diplomatic policy against Japan with an active attitude with a wide range of maneuver because Qing Dynasty completely secured the territory and alleviated the pressure and watch on Joseon. When Ukyong , the son of So Yosijane(宗義眞) who is the governor of Tsushima, was elevated as a legitimate son in 1683, Tsushima asked to issue Ukyong-Doseo, but Joseon denied to issue Ukyong-Doseo because the previously issued Unman- Doseo was not returned. To issue Ukyong-Doseo, Tsushima continuously dispatched Jaepan-Chawae and stayed in Waegwan for a long period while raising various issues to put pressure on Joseon. This was the typical negotiation strategy of Tsushima to put pressure on Joseon when Tsushima wanted to achieve what they want. However, Joseon reaffirmed to deny the issuance of Doseo and showed their strong policy by limiting the number of days for staying for Jaepan-Chawae and stopping daily payment necessities when Jaepan- Chawae overlapped. When a new Jaepan Chawae(平成尙) was arrived while a previous Jaepan Chawae(平成辰) was staying in Waegwan, Joseon imposed severe sanctions by stopping daily payment necessities to the previous one and denying to host the new one. After that, Joseon strongly urged the previous conditions to return of Unman-Doseo and denied hosting Jaepan-Chaewae when the allowed stay was passed. However, the negotiation for Doseo was terminated because Tsushima could not ask to issue Ukyong-Doseo when Ukyong became a Tsushima governor. Consequently, the return of the Unman-Doseo that Joseon claimed did not execute, but Joseon confirmed the Doseo rule and tried to correct the unreasonable negotiation practices of Tsushima through the ten-year long negotiations on Ukyong-Doseo. Moreover, Joseon clearly showed the change and intention of diplomatic stance against Japan to Tsushima. This change of Joseon served as momentum that help Joseon actively lead futur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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