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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여진 관계와 여진인식의 고착화-태조~세종대를 중심으로-

A awareness and relation about Jurchen in the early years of Chosun-from King Taejo to King Se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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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에서는 조선초 집권층의 여진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과정을 여진 관계의 추이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건국 이전부터 태조는 동북면 여진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들을 조선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고 자신했다. 태종 초년에도 전대처럼 여진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05년에 명의 초유로 동북면 여진인이 응하여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1406년에 올적합이 조선을 침략한 것을 계기로 조선과 여진의 관계는 침략과 방어의 관계로 전환되었고, 1410년의 제1차 여진정벌로 인해 조선과 여진의 관계와 인식이 악화되었다. 한편 태종은 정벌이라는 강경책을 사용하는 한편 회유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세종도 1432년까지는 태종의 정책을 답습하여 여진인을 대하였다. 특히 1423년에 회령으로 돌아온 동맹가첩목아에 대해 우대의 정책을 펼쳤지만, 한편으로 그들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1433년(세종 15)에는 제1차 파저강 정벌과 동맹가첩목아의 피살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 할 수 있다. 이후 1437년의 제2차 파저강 정벌, 1440년의 범찰과 동창의 파저강 이주 등 일련의 사건들로 여진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증하여 그들에 대한 인식의 고착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에 의해 조선은 여진을 ‘夷狄’이라기보다 ‘禽獸’에 가까운 개념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여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면서도, 여진정책에 있어서는 포용의 자세로 임하고자 했다. 그 결과 여진정책의 근간은 세종대에 완성되었고,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선초 여진인식은 조선의 지배층의 대외관 뿐 아니라, 여진정책 추진에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Abstract

In this paper I hope to show how awareness of ruling classes about Jurchen(女眞) was changed from development of its relation in the early years of Chosun(朝鮮). Taijo(太祖) treated in a friendly way toward Jurchen from immediately after birth of Chosun, and was overconfident that Jurchens were under it. And it was keeping friendly relation with Jurchen in the early years of Teajong(太宗)’s Period. But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became worse because Ming(明) conciliated the Northeast Jurchens in 1405. Ultimately, Udike(兀狄哈) invaded Chosun, so relations between them were changed ones of aggression and defense in 1406. The relation and perception between them became worse because of the first Juchen campaign in 1410. On the one hand Teajong have took a hard line with conquest, but on the other, strengthened influence through conciliatory policy. Sejong(世宗) also treated Jurchen in accordance with Taejoug’s policy until 1432. Chosun have carried out a much better treatment about Tong Mongke Temur(童猛哥帖木兒) who returned to Haeryong in 1423, but kept strict watch about Li Manzhu(李滿住). In 1433, this time was important events of the First conquest of Pajur, Tong Mongke Temur’s death, and so on. These were a starting point of development of 4 counties and 6 of fortresses(4郡6鎭). After that events, there are the second conquest of Pajur in 1437, migration into river of Pajur(波豬江) of Bum-chal(凡察) and Dong-Chang(童倉) in 1440, and so on. As a result, a lot of negative cognition about them were increased and became permanent in Chosun. However, Sejong had not only negative cognition about Jurchens, but had tolerant attitude. As the result, the basis of Jurchen policy was competed in Sejong, continuing to have a effect after the this time. Thus, I think that awareness about Jurchen appeared not only a view of diplomacy of Chosun’s ruling classess but worked as important factor to promote Jurche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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