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중대 무열왕 가계와 김유신 가계의 균열
The Rift Between King Muyeol(武烈王)’s Descendants and Kim Yusin(金庾信)’s Descendants in the Jung-dae period(中代)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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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중대에 부계적 요소가 강화되는 경향에 주목하여 무열왕 가계와 김유신 가계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 중대는 부계적 요소가 강조되던 시기였다. 중대 왕실은 당으로부터 부계적인 속성을 지닌 종묘제를 도입하여 무열왕 가계만을 위한 제장을 마련함으로써 자신들과 다른 진골 가계의 구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혜공왕은 종묘를 재편하여 미추왕을 시조대왕으로 삼아 수위에 모셨다. 첫 김씨 왕이라는 이유였다. 성씨는 종묘제와 마찬가지로 부계적인 성격을 띈다. 중대는 지배층에서 성씨 사용이 증가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미추왕 추숭은 부계적 요소가 강조되던 중대의 경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양 가계는 출자 관념, 시조 인식, 성씨 사용에서 동일한 양상이 확인된다. 계보를 重疊되게 인식하는 바탕에는 두 차례의 혼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非부계적인 요소에 의하여 동질성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은 친속이나 親親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소원한 신하로 인식되었다. 김유신의 혼령은 후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무열왕이나 문무왕이 아닌 미추왕에게 하소연하였다. 관계에 균열이 생겼음을 시사한다. 非부계적인 계보 인식에 의하여 밀착되었다는 사실, 부계적 요소를 강조하는 분위기, 중대 왕실의 배타성 추구 등을 함께 고려하면 무열왕 가계는 김유신 가계에 대한 遊離를 시도하면서 부계적 계보 인식의 강조를 수단으로 활용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다만 성덕왕이 김윤중을 善善의 대상으로 대하면서 후대하였고 김유신의 공적을 치하하였기 때문에 유리를 통하여 김유신 후손의 정치적 위상이 하락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新金氏의 사용 범위를 김유신 후손이나 금관가야 출신으로 한정하는 기존의 이해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Abstract
Kim Yun-joong(金允中), the grandson of Kim Yusin, was excluded from kinship or consanguinity. The spirit of Kim Yusin complained about the unjust death of his descendant to King Michu, not to King Muyeol or King Munmu(文武王). This suggests a rift in the relationship.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y were bound together by a non-paternal factors, the atmosphere emphasizing paternal factors, and the pursuit of royal exclusivity, it can be understood that King Muyeol's descendants used the emphasis on paternal genealogical perception as a means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Kim Yusin’s descendants. However,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 political status of Kim Yusin's descendants declined through distancing, because King Seongdeok(聖德王) treated Kim Yun-joong as an object of goodwill and praised Kim Yusin's achievements. In addition, the existing understanding that links Kim Yusin or Geumgwan Gaya(金官加耶) to surname Sin-Kim(新金氏) may need to be reconside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