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 초기 자본가 중역겸임제에 의한 정치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
The Formation of the Capitalists' Political and Social Networks by the interlocking directorate in the Early Years of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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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 초기 기업간 또는 자본가의 중역겸임제를 통한 경제적 네트워크의 기반 위에 만들어진 정치・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층적 구조와 기능을 밝힘으로써, 제국과 식민지라는 종속관계 속에서 형성된 한국자본주의의 식민지적 특질을 추출하였다. 주로 1920년대 3사 이상 중역겸임제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 경인그룹과 부산그룹을 대상으로 검토하였다. 이 연구는 사회학적 네트워크 조사 방식 위에 역사학적 분석방법을 취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1920년대 3사이상 중역겸임을 통한 경제적 네트워크 경인그룹과 부산그룹의 실태는 다음과 같다. 경인그룹은 경성과 인천지역의 개시장·개항장에 초기 정착한 재조일본인들과 관료출신에서 자본가로 전환한 조선인 상층의 연합으로 집약된다. 이 그룹은 중핵인물 釘本藤次郎, 賀田直治, 백완혁, 조진태 등 총 22명이 3사 이상의 기업에 중역과 대주주를 겸임하고 있는 구조이다. 제면, 축산, 요업 등 제조공업에서 출발하여 은행, 증권신탁 등 금융업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였다. 부산그룹은 부산지역의 개항장에 초기 정착한 재조일본인 자본가만으로 배타적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 중핵인물 大池忠助、迫間房太郎, 香椎源太郎 등 총 9명이 3사 이상의 기업에 중역과 대주주를 겸임하고 있는 구조이다. 수산업, 임대업, 축산업 등 모두 무역업과 관련되어 있다. 두 그룹 모두 생산재공업은 전혀 없어 기술면에서 종속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각 그룹 중역 겸임자들은 경제단체와 사회단체의 간부와 회원으로 중첩되어 있다. 경인그룹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이원적 톱클래스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은 경제단체, 주로 경성상업회의소, 경성상공회의소에서, 조선인들은 사회단체, 대정실업친목회, 명치신궁봉공회 등에서 간부를 역임하였다. 부산그룹은 오직 일본인만으로 배타적으로 조직되었으며, 부산상공회의소, 부산번영회, 거류민단 등의 톱클래스를 형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취미활동, 향우회, 정치모임을 만들어 인맥을 만들어갔다. 셋째, 각 그룹의 중핵 자본가들은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경인그룹의 구기모토(釘本), 가다(賀田)는 조선총독 사이토와 정무총감 미즈노가 주도하는 조선산업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이었다. 또한 조선인 백완혁, 조진태, 예종석 등은 모두 경성과 경기도의 도평의회, 도회 의원에 임명되어 지방자치제도 속으로 포섭되었다. 또한 부산그룹의 주요멤버는 거의 일본참모본부, 통감부, 총독부와 정경유착을 통해 자본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들은 경남도평의원, 부산부정, 일본제국의회 중의원 의원으로 정치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부산지역을 기반으로 전국, 일본 나가사키, 가나자와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요컨대, 일제강점초 조선에서 자본을 축적한 재조일본인과 관료출신 조선인상층은 중역겸임제를 통해 경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단체, 사회단체, 정치활동 등 각종 주요단체의 리더를 맡아 지역의 유력자로 등극하여, 이른바 식민지적 부르주아층이 형성되었다. 1920년대 중역겸임 시스템은 거의 일본인만 배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경인그룹의 경우도 관료출신 조선인만 들어가 있어, 바꿔 말하면 종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조선인 대상인들은 배척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역겸임자들은 각 지역의 유력자가 된 것을 기반으로 전국, 일본까지 사업과 정치적 영향을 확대해갔다.
Abstract
本稿は、日帝の植民地期、会社間または資本家の重役兼任制を利用して経済的ネットワークが形成され、その基盤の上に政治社会的ネットワークが重層的に作られ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主として1920年代に3社以上の企業において重役と大株主を兼任していた経済的なネットワークである京仁グループと釜山グループを対象に検討した。この研究によって、帝国と植民地という従属関係の中で、形成された資本主義の植民地的特質を明らかにした。研究方法は社会学的ネットワークの調査方式に基ついて歴史学的な観点からアプローチした。その結果は次のとおりである。第一に、京仁グループの特徴は、京城と仁川地域の開市場・開港場に定着した在朝日本人と官僚出身の朝鮮人上層の連合に集約される。このグループの主要人物は日本人の釘本藤次郎、賀田直治、吉田秀次郎、富田儀作などと、朝鮮人の白完爀、趙鎮泰、芮宗鍚などである。総 22人が 3社以上の企業において重役(取締役、監査役、相談役)と大株主を兼任している構造が創出され、これによって企業経営が支配された。主に製綿、畜産、窯業など製造工業を始め、銀行、証券信託など金融業へ事業分野が拡張された。しかし生産材部分工業は皆無であるため技術面では従属的構造が現われた。釜山グループは、釜山地域の開港場に定着した在朝日本人資本家のみで形成され、朝鮮人は重役になれなかった排他的な構造である。主要人物は、対馬の大池忠助、大阪の迫間房太郎、福岡の香椎源太郎などである。総 9人の日本人が 3社以上の企業において重役と大株主を兼任している構造で、水産業、賃貸業、畜産業などほぼ貿易業と係わっている。第二に、こうした経済的ネットワークの基盤の上に、各グループの重役兼任者は経済団体と社会団体に重複して幹部と会員になっている。京仁グループは、日本人は経済団体、朝鮮人は社会団体に配置されるという二元的なシステムになっている。すなわち、主に日本人重役兼任者は京城商業会議所、京城商工会議所などの経済団体の幹部として、朝鮮人はすべて大正実業親睦会など社会団体の幹部として務めている。釜山グループの重役兼任9人は、釜山商業会議所、釜山商工会議所、釜山繁栄会、釜山甲寅会、居留民団、スポーツ団体などのリーダーと会員となっている。ただしこのグループは日本人だけの排他的な取り組みをしているという特性を持っている。また和歌山県会、竹豊同志会、大阪民友会など郷友会を活用して人脈を作っていた。第三に、各グループの主要資本家は政治圏と緊密な関係を形成していた。京仁グループの釘本、賀田は、朝鮮総督斎藤実と政務総監水野錬太郎が主導していた朝鮮産業調査委員会の委員となった。また朝鮮人8人は、京城と京畿道の道評、道議に任命され地方自治制度の中に包攝された。民族改良化政策の一つである。一方、釜山グループの迫間と香椎は、日露戦争の際に、日本軍参謀本部の鎮海湾要塞地帯作る工作の行動隊であった。すなわち朝鮮本土における土地闇買工作と海における李王家漁場の貸し下げ工作に協力した。大池は慶南道庁の釜山移転の際敷地を寄付した。このグループの人物は、日本軍参謀本部、韓国統監府、朝鮮総督府と政治的な癒着関係を通じて資本家へ転身することが多かった。さらに、大池は日本帝国議会の衆議院議員となり、香椎は日本硬質陶器会社のCEOとして、釜山地域を基盤に、朝鮮全国へ、日本の長崎、金澤などまで勢力を拡張しえた点には注目すべきである。要するに日帝強制占領初期、朝鮮で資本を蓄積した在朝日本人と官僚出身の朝鮮人上層は、重役兼任制を通じて経済的ネットワークを形成した。それを基盤に、経済団体、社会団体、政治活動などさまざまな主要団体のリーダーを引き受けることによって地域の有力層となった。いわゆる植民地的ブルジョア層が形成された。1920年代において重役兼任制のシステムはほとんど日本人のみによって排他的に形成されたのが特徴であり、唯一朝鮮人が重役になっている京仁グループの場合においても官僚出身のみ重役になりえた。換言すれば、従来、既得権を持っていた朝鮮人大商人を排斥する構造が作られたといえよう。さらに重役兼任者は、各地域で有力層になったことを基盤として、全朝鮮、日本まで縄張りを拡張させることが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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