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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본의 국민교화정책과 농촌경제갱생운동

Moral Suasion Campaigns and The Farm Village Economic Revitalization Campaign in Moder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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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일본근대의 특징 중 하나는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국민교화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먼저 ‘왕정복고’를 슬로건으로 등장한 메이지정부에서는 종래의 막번체제와는 질적으로 틀린 천황제 통일정권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메이지정부는 첫째, 전국 일률적으로 국민(인민, 백성, 신민)에 대해서 위로부터 강력한 개화정책을 추진하였고, 둘째, 새로운 국가체제에 상응하는 덕의 체계 확립에 힘을 들였다. 정부는 학교교육을 통해서, 또는 국민교화운동을 통해서 왕정복고의 이데올로기 보급에 진력했다. 물론 그 이유는 국가통합의 정신적 유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였는데, 그 방식이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국민 교화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국민형성을 추진해가는 방식이었다. ‘계몽과 교화’ 이것이 메이지정부가 지녔던 속성이었을 뿐만아니라 근대일본의 속성이었다. 농촌갱생운동의 교화정책 목표는 세계대공황 및 만주사변으로 맞게 된 국난을 극복하여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나아가 한 단계 더 높은 국운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기초인 ‘촌의 근본적 재건’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이 촌락 재건을 위한 정책내용을 보면 국가의식과 농민정신의 함양 및 ‘경제’의 갱생이었다. 물론 국가의식과 농민정신의 강조는 자발적인 ‘경제’갱생의 심정을 끌어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 ‘경제’갱생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 조직화, 인보공조의 정신, 자력주의였다. 이런 수단을 활용하여 ‘촌의 근본적 재건’을 꾀했는데, 그 내용은 자력갱생적 인간을 양성해냄을 전제로 하여, ‘경제’갱생을 방애하는 공동체적 요소, 예를 들면 賴母子講, 관혼상제, 사교관례 등을 타파하고자 했으며, 더불어 촌락 내에 있는 ‘보수적’・‘봉건적’요소를 타파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갱생운동은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촌락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 원리는 유통과정의 공동화, 신용의 부락(혹은 組)단위의 연대보증제, 부채정리의 조합결성, 공동작업 지도에서 보이듯이 공동화의 확대였다. 이 공동화의 확대는 갱생운동 이전이나 패전 이후의 농촌지배와 비교해 볼 때 시대적 특징으로 부각되어야 할 점이다. 농림관료는 위와 같은 성격의 촌락 재건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지, 구래의 지주를 정점으로 한 공동체질서를 재편・강화하려거나 혹은 중농주도형의 새로운 공동체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추진 담당계층을 애매하게 함으로써 농촌내부의 계급대립을 포함한 내부 알력을 현재화시키지 않으려 했다고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면 농림관료는 ‘경제’갱생이란 국가목표를 위한 공동체 건설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本稿は、1932年施行された農村経済更生運動における教化政策を分析したものである。従来、農村経済更生運動は、生産力増大の政策として分析されてきた。生産力増大政策とともに強調した教化の側面を看過しがちであった。 本稿では、農村経済更生運動における教化側面の内容の意味を分析し、またその強化の内容がどのように形成されたのかを明らかにした。 政策‘萬邦無比’の‘万世一系の天皇’イデオロギーである国民道徳論は西洋との対抗を目的として近代に造られた伝統である。この国体論の核が祖先崇拝(敬神崇祖)観念である。近代の祖先崇拝観念は、天皇を中心に国民が一大家族のような社会を形成しているという家族国家論を土台としている。つまり、皇室は国民の本家のような存在と考えられ、祖先をさかのぼると皇室につながるという信念である。なぜならば、祖先が皇室の分かれだったり(同一血統)、あういは祖先が皇室に仕えてきたりした家系が多いからである。それゆえ、祖先を敬うことは皇室を敬うことにつながる。敬神と崇祖とは、別々の事柄ではなく、天皇家の神話的先祖を基にして合体されている。近世にも‘敬神’と‘崇祖’とは存在した。しかし国家的祖神崇拝と祖先崇拝とをどのように結合させるかについては、説明されていなかった。これを天皇家の神話的先祖を基にして合体させた敬神崇祖観念がいつ、どのようにして造られたかについてはいまだに明確ではないが(これ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本研究の第一の課題)であった。この敬神崇祖観念の機能は次のように考えられる。 第一、民族の独自性を体系化する際の中心テーマは、民族史の始点をしめす祖先起源と祖先文化である。祖先起源と祖先文化の共有は、民族共同体としての独自性の源泉となるのみならず、共同体の過去、現在、未来の世代を結び付けるので、国民の創造において有効なレトリックとなる。国民が覚醒するためにその祖先への言及は最も効果的である。敬神崇祖観念の果たした役割はまさにこれである。第二に、敬神崇祖は排外主義につながる。第三に、1930年代の日本のみならず、植民地朝鮮、台湾においても、‘国体観念’ ‘敬神崇祖’をスローガンにした教化政策が展開されたことから帝国日本の思想でもあった。この以外に新たに注目すべきことが、第四の生産力拡大主義、第五の郷土主義(村落共同体意識など)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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