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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 근거지의 일고찰 -마쓰우라(松浦)와 마쓰우라토(松浦黨)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Base of Wakou in the lateGoryeo period -Focusing on Matsuura and Matsuu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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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고대 말기부터 마쓰우라(松浦)는 해적과 밀접하게 관련된 지역이었다. 13세기 마쓰우라가 왜구의 근거지였고, 이곳의 약소무사와 주민들이 왜구이며 약탈자로 활동하였다. 14세기 남북조내란기에 접어들면서 마쓰우라라는 일족 이름을 함께 사용하여 일족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1350년 간노죠란(觀應擾亂)의 대 혼란에서 마쓰우라의 약소무사들은 정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활동하였다. 고려는 이 시기에 창궐하는 왜구를 “경인년(1350) 이후의 왜구”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편 1371년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이 규슈로 내려왔을 때, 마쓰우라 일족의 약소무사들이 대해적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한편 마쓰우라의 약소무사는 해적과 약탈을 금지하며 어장의 경계를 구분하는 ‘계약장(契約狀)’과 ‘압서장(押書狀)’을 체결하였다. 이들은 ‘계약장’으로 왜구 출몰을 자제시켰고, ‘압서장(押書狀)’으로 왜구들의 안정적인 정착에 유도하였다. 이로서 마쓰우라의 약소무사와 주민들이 고려 왜구의 창궐, 혹은 소멸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쓰우라 지역은 왜구 근거지이며 마쓰우라토는 고려 왜구의 주체 세력이었다.

Abstract

Since the end of ancient times, Matsuura(松浦) has been closely related to pirates. In the 13th century, Matsuura was the base of Wakou, and the small samurai and residents of Matsuura were Wakou and predators. In the 14th century, Matsuura tried to overcome the division of relatives by jointly using the names of relatives. However, in 1350 in Kannojoran(觀應擾亂), Matsuura's small warriors worked individually according to the political situation. In addition, the Matsuura relatives crossed the ocean and sought a new way of life to Wakou. Their Wakou activities are called "Wakou after Gyeongin Year (1350)". On the other hand, when Ryoshun Imagawa descended to Kyushu in 1371, the small warriors of the Matsuura family had grown into uncontrollable pirate forces. In addition, Matsuura's ‘Kyeoyakjang(契約狀)’ and ‘Apseojang(押書狀)’ appeared. The ‘Ikki­ Kyeoyakjang(一揆契約狀)’ refrained from appearing in Wakou, and the ‘Apseojang’ induces the Wakou to establish a stable in Urautsi(浦內). As a result, the Matsuura area is the base of Wakou, and the small samurai of Matsuura were closely related to the outbreak or extinction of Wa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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