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求貿에 대한 조・일 양국의인식과 구무의 특징
The realization of GUMU Trade(求貿) in Joseon&Japan and the Speciality of GUMU Trade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기존 조일무역 관련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求貿와 관련해서 구무를 바라보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시각, 그리고 동아시아 무역에서 구무가 지니는 특수성 등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조일 양국 교섭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있다. 구무는 일본 막부로부터 대조선외교와 무역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은 쓰시마가 필요한 물품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면, 조선조정에서 사안을 심의하고 허가해서 이루어지는 교역이다. 이러한 구무는 교역시기나 물품의 종류・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처리 및 결제방식이 다양하고 공・사무역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외교와 무역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조일 양국 경제교류의 특별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구무는 쓰시마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경제적 욕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외교적・정치적 비중 역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쓰시마의 구무 요청은 기본적으로는 쓰시마 내의 필요에서부터 기인할 것이었지만, 그러한 필요에는 쓰시마번주의 保身을 위한 대막부 교섭의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쓰시마는 구무를 통해 자체적인 생활물품을 충당하기도 했지만, 막부 교섭에 이러한 물품을 활용하기도 했다. 쓰시마번주는 막부에 자신이 조선과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대조선과의 무역에 있어서도 유리한 지점을 차지해갔다. 조선 측으로서도 국교재개 이후 일본 막부와의 교린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나가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양국 관계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쓰시마의 입지를 강화・옹호하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수단의 하나로 조선에서는 구무를 통한 다양한 물품교류를 허락해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무는 쓰시마 측 불시의 필요에 따라 조선 측으로 해당 물품의 교역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와 같은 필요나 교역이 늘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기는 해도 조선에서도 필요한 경우 쓰시마 측에 물품을 요청해서 교역이 이루어진 경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보다 더 다양한 외국과 관계를 맺고 있던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더라도 공식적인 교역 외에 구무와 같이 정부 대 정부를 통한 별도의 요청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진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구무는 조선과 쓰시마로 연결되는 매우 특수한 관계 내에서 이루어져 당시 한일관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the reality of bilateral negotiations between Joseon and Japan by considering the perspective of Gumu Trade in relation to Gumu Trade, which was neglected in previous studies on Joseon-Japan trade, and the specificity of Gumu Trade in East Asian trade. Gumu trade indicates a form of trade in which Tsushima island of Japan, commissioned by the Japanese Bakufu to establish and maintain diplomatic relations and trades with Joseon, asked Joseon for specific goods when unexpected needs arose in the province. The gumu trade was conducted irregularly, and there was no mutually agreed norm as to the type and quantity of goods for trading. In addition, performed in various modes of operation, the gumu trade was connected to public and private trades. Thus it illustrates special aspects of economic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Japan in a time when diplomacy and trade were not separated. Basically, Gumu trade was based on Tsushima’s poor economic situation and economic needs. However, the diplomatic and political weight was also in a big position. In other words, Tsushima’s request for gumu trade would basically originate from the needs within Tsushima, but such a need could not be overlooked in terms of the Bakuhu bargaining for the preservation of the Tsushima-hanshu. Tsushima used gumu trade to provide its own daily necessities, but it also used these items for bargaining with the Bakuhu. Tsushima-hanshu raised his status by emphasizing that he was the only entity capable of trade with Joseon in the Bakuhu, while also occupying an advantage in trade with Joseon. After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 the Joseon Dynasty had to lead a smooth relationship with the Japanese Bakuhu. To this end, it was necessary to strengthen and defend Tsushima’s position, which served as an intermediary between the two countries’ relations, while effectively controlling it. As one of such means, it seems that Joseon allowed various exchanges of goods through gumu trade. On the other hand, most of the cases of gumu trade requested the trade of the goods from the Joseon side in response to unexpected needs from Tsushima. However, such a need or trade is not always one-sided, so although there are relatively few cases, it was also possible to confirm the case of trade by requesting goods from Tsushima when necessary in Joseon. In addition, compared with the case of other East Asian countries, which had more diverse relations with foreign countries than Joseon, there were few cases in which trade was made through a separate request from the government to the government, such as gumu trade. In this way, it can be said that gumu trade was formed within a very special relationship connecting Joseon and Tsushima, show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apan at the time.
참고문헌 (45)
- "世宗實錄地理志", ~
- "中宗實錄", ~
- "仁祖實錄", ~
- "顯宗改修實錄", ~
- "肅宗實錄", ~
- "英祖實錄", ~
- "承政院日記", ~
- "典客司日記", ~
- "倭人求請謄錄", ~
- "春官志", ~
- "譯科榜目", ~
- "同文彙考", ~
- "海游錄", ~
- "賚賜空靑, 阿克敦詩", 서울대학교규장각 소장, ~
- "交隣提醒", ~
- "館守日記", ~
- "舊事編集", ~
- "朝鮮より所望物集書(『分類紀事大綱』 1기 편찬분)", 日本國立國會圖書館 所藏, 韓國國史編纂委員會 MF000, ~
- "日本馬朝廷より所望之一件(分類紀事大綱 6기 편찬분)", 韓國國史編纂委員會, ~
- 김강일, "倭館을 통해서 본 조선후기 對日 求請物品 - 「朝鮮より所望物集書」를 중심으로 -", 일본역사연구, (34), pp.111~136 (2011), 일본사학회
- "역사와 세계", 2008, 95~136, pp.효원사학회
- 김경미, "17∼18세기 日本의 朝鮮 藥材 求請", 대구사학, 119, pp.317~356 (2015), 대구사학회
- 김동진, "병자호란 전후 우역 발생과 농우 재분배 정책", 역사와 담론, (65), pp.263~310 (2013), 호서사학회
- 김동철, "조선후기 통제와 교류의 장소, 부산 왜관", 한일관계사연구, (37), pp.3~36 (2010), 한일관계사학회
- 김문식, "18세기 전반 權以鎭의 대외인식", 도산학보, 4 (1995)
- 김태훈, "숙종대 대일정책의 전개와 그 성과", 한국사론, 47 (200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 양흥숙, "조선후기 왜관 통제책과 동래 지역민의 대응", 역사와 세계, 37, pp.105~148 (2010), 효원사학회
- 오성, "조선후기 인삼무역의 전개와 잠상의 활동", 세종사학, 1 (1991), 세종사학회
- 막부의 대외관계 형성과정, "한국학연구", 2009, 231~274, pp.한국학연구소
- 이성무, "조선시대잡과합격자총람" (199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이승민, "조선후기 對馬島 求貿의 개념과 실태", 한일관계사연구, (36), pp.67~109 (2010), 한일관계사학회
- 교역과 그 의미, "사학연구", 2012, 229~269, pp.한국사학회
- 교역과 그 의미, "한일관계사연구", 2013, 171~206, pp.한일관계사학회
- 이승민, "조선후기 대일 도자교역 실태와 그 의미", 조선시대사학보, (81), pp.235~264 (2017), 조선시대사학회
- 이승민, "조선후기 求貿를 통해서 본 조· 일간 물품교역의 현황과 특징", 동국사학, (67), pp.77~114 (2019),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이승민, "조선산 黃毛筆의 생산과 일본과의 교역", 한일관계사연구, (70), pp.157~182 (2020), 한일관계사학회[DOI]
- 이승민, "조선후기 求貿의 시행과 운영절차", 한국학논총, 55, pp.67~101 (2021), 한국학연구소[DOI]
- 이유리, "「倭人求請謄錄」에 나타난 조선 서적의 일본 전래", 서지학보, (37), pp.105~135 (2011), 한국서지학회1
- 정성일, "춘계박광순박사화갑기념경제학논총" (1993), 춘계박광순박사화갑기념논문문집간행위원회
- 정성일, "왜관 『관수일기』의 학술적 가치", 열상고전연구, (63), pp.7~31 (2018), 열상고전연구회[DOI]
- 하여주, "조선후기 대일관계 속의 皮物", 한일관계사연구, (49), pp.393~441 (2014), 한일관계사학회
- Ronald Toby,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일본의 ‘쇄국’은‘쇄국’이 아니었다-" (2013), 창해
- 永積洋子, "唐船輸出入品數量一覽(1637~1833年) -復元 唐船貨物改帳・歸帆荷物買渡帳-" (1987), 創文社
- 任鴻章, "近世日本と日中貿易" (1988), 六興出版
- 田中健夫, "對外關係と文化交流" (1982), 思文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