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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임술통신사행의 임술약조 강정과조일 교린관계의 재편

A Study on the Reorganization of Neighbors System between Joseon and Japan in the Process of Imsul-Tongsinsa and Imsul-Treaty in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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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682년 ‘통신사’는 초량으로 신왜관이 이건된 후 외교질서 재편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이 부가되었다. 이 사행에서는 왜관 내 대마도인을 통제하기 위해 癸亥約條나 約條制札의 내용 결정 뿐 아니라 추가로 약조가 체결된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壬戌約條”가 그것이다. 임술약조는 조선으로 왕래하는 차왜를 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계해약조나 무오절목, 특히 왜관에서의 일본인 통제라는 주제에는 주목하였으나 임술약조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1682년 통신사행 과정에서 초량왜관 이전 후 대표적인 일본 사신인 차왜제도 재편의 상황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임술약조를 살펴보았다. 임술약조 교섭의 가장 큰 배경은 초량으로 신왜관 이전이다. 초량으로의 왜관 이전에 대한 결정이 마무리되면서 구역의 설정, 공간 배치 등 관련 사항들이 논의되었는데, 대체로 왜관에 거주하게 될 왜인 실무자들의 요구에 부응한 면이 많았다. 임술약조 교섭의 또 다른 배경은 ‘표왜입송회사차왜의 소멸과 재판차왜의 생성’에서 찾을 수 있다. 신왜관 조성 후 일본사신이 조선으로 내도하면서 조선 측에서는 이들 사신에 대한 접대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무오약조의 실제적 운용을 포함하여 차왜 및 세견선 접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약조를 논의하는 임무를 임술통신사가 이행하게 된 것이다. 통신사가 강정한 임술약조의 내용은 크게 3가지 조목이다. 첫째 규정된 것 이외의 차왜는 보내지 말 것, 둘째 표류인 영송시 별도의 차왜를 보내지 말고 대관에게 순부하게 할 것, 셋째 양국 매매시 담당 대관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임술약조의 모든 내용이 실제로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차왜겸대제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차왜를 대차왜 및 소차왜로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로 인해 島主告還差倭나 漂人領來差倭는 임술약조가 강정된 초반기에 접대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두 차왜는 차후 다시 접대 대상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그 외 조선 측에서 대차왜나 소차왜로 규정되지 못한 다른 차왜들은 임술약조를 이유로 접대 대상에서 제외되어 갔다. 임술약조가 계해약조처럼 비에 새겨지지 않은 것은 왜관에서의 활동 규제라는 측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왜관이 무역의 장이라는 역할 외에 사신접대를 행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임술약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통신사를 비롯하여 그 반대편에 있었던 사신인 차왜와 관련된 약조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17세기 말 조일외교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종종 발생하던 상황에서 임술약조는 통신사라는 국왕사절을 통해 양국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음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1682, Tongsinsa was dispatched for the first time after the creation of a new Waegwan in Choryang. In this Joseon envoys, the Imsul Treaty(壬戌約條) was signed. The Imsul Treaty contains efforts to reduce hospitality for Japanese envoys. Despite this importance, there has been little research on the provisions of Imsul Treaty. For this reason, this study looked at the provisions of Imsul Treaty. The reason for the signing of the Imsul Treaty was first, in order to manage Japanese envoys while Waegwan moved to Choryang. Another background for the negotiations on Imsul Treaty can be found in the extinction of Pyowaeipsonghuesachawae(漂倭入送回謝差倭) and the creation of Jaepanchawae(裁判差倭). For this reason, the content of the Imsul Agreement contains the intention to reduce entertainment expenses by arranging Chawae. The contents of the Imsul Treaty agreed by the news agency in 1682 are three items. First, do not send Chawae other than those specified. Second, when returning the drifter, do not send a separate Chawae, but attach it to Daegwan. Third, when the two countries trade, the number of Daegwan in charge will be reduced. Chawae has been organized into Big-Chawae and Small-Chawae due to the provisions of Imsul Treaty. And only served Chawae as prescribed.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there were often large and small disputes between Joseon and Japan in diplomacy. In this situation, it can be said that the Imsul Treaty has laid the foundation for maintaining a peaceful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through Tong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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