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정명(征明)’에 대한 고찰
Research on Toyotomi Hideyoshi's idea of 'Invading 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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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한 ‘정명’의 용례에 관하여 일본 국내와 국외로 나누어 보고자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간파쿠(關白) 취임 이후 재지 다이묘(大名)들 간의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명 정벌의 의지를 드러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 정벌 의지가 표명된 것은 일본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征明)’에는 ‘왜’라는 요소가 빈약하다는 점에 있다. 본고의 검토에 따르면, 일본 국내에 적용된 히데요시의 ‘정명’에는 특정 사상에 근거한 구체적인 논리 구조가 부재하며, 힘의 논리만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에 적용되었던 히데요시의 ‘정명’은 일본 전역에 군사력이 중시되었던 중세 일본 봉건 지배 구조를 바탕으로 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설파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우상화 및 신국 일본의 주재자라는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명’이 철저히 힘을 바탕으로 한 신종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은 조선을 비롯한 제 국가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없었다.
Abstract
In this paper, I tried to how Toyotomi Hideyoshi used the word 'Invading Ming' in Japan and overseas. Toyotomi Hideyoshi expressed his will to conquer the Ming in the process of resolving disputes between the feudal lords after the inauguration of Kanpaku. It was not only in Japan that Toyotomi Hideyoshi expressed his will to conquer Ming. The problem is that What can be found is that Hideyoshi's plan to invade Ming applied in Japan lacks a specific logical structure and strongly reflects the logic of power. Considering this, it seems correct to understand Hideyoshi's plan to invade Ming applied in Japan as an idea based on the medieval Japanese feudal governance structure where military power was emphasized. Toyotomi Hideyoshi's plan to invade Ming preached externally was based on the idolization of Toyotomi Hideyoshi and the fact that he was the ruler of the God's country. However, the plan to invade Ming was based on military power, Toyotomi Hideyoshi's plan to invade Ming couldn't convince the other countries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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