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촌강 전쟁’의 파병 원인과 패인에 대한 검토
A review of the cause and defeatof the ‘Baekchon River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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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백촌강 전투(전쟁)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의 하나로 우선, 백제멸망 이전의 왜국과 백제의 관계 속에서 백촌강 전투(전쟁)의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았다. 특히 파병 원인 및 목적과 관련해 종래의 통설적 이해인 ‘동이의 소제국’론에 입각한 일본학계의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372년부터 66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지속된 ‘質’ 외교(왕족외교)의 산물인 양국의 친연관계와 정치문화 시스템의 공유에 최대의 원인을 찾았다. 다음으로 백촌강에서의 패전 이유를 종래의 이해에 더해 齊明朝 당시의 왜국 지배층이 지닌 대외인식, 국제정세 인식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해해 보았다. 즉 최대의 패인은 전쟁 대상을 중국(唐)이 아닌 신라로 설정한 점, 전쟁 규모나 준비 과정을 7세기 초반 推古朝의 신라 정토나 齊明朝 단계의 국내의 에미시(蝦夷) 정토 정도로 안이하게 판단한 점에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패전의 결과가 가져온 커다란 영향, 즉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언급에 그쳤으나, 후일 상론할 예정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one of the works that pursue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Battle of the Baekchon River (war), and first of all,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Battle of the Baekchon River (war) was search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Japanese and Baekje before the destruction of Baekje. In particular, it critically examines the understanding of Japanese academia based on the traditional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the "small empire of Dongyi" regarding the cause and purpose of the dispatch of troops, and the "質" that lasted stably over a long period of 372 to 660. Next, I tried to understand the reason for the defeat in the Baekchon River, focusing on the issues of external and international awareness of the Japanese ruling class during the Saimei Period (齊明朝). In other words, the biggest defeat was that the target of the war was Shilla(新羅), not China (唐), and the size and preparation process of the war were easily judged as the plan to conquest Shilla in the Suiko Period(推古朝, early 7th century) and the conquest of Emishi(蝦夷) in during the Saimei Period(齊明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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