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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業의 明末淸初 戰爭 記憶

Kim ChangUp’s memory of the war during the end of Ming and the beginning of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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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노가재 김창업은 연행을 통해 명청환대기의 역사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전환을 확인하고 강희 성세의 번영상에도 큰 충격을 받아, 기존의 대명의리론을 파기하고 현실을 직시한 새로운 대청관을 형성하였다. 노가재는 명·청 교체기 청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고 만인, 한인 간의 모순도 사회 안정의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는 명나라 멸망의 불가피성과 청나라의 강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대전환이라는 것을 몸소 직감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의 심층적 원인 규명보다 구체적 현상과 사례의 진술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노가재의 연행은 강희제가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대통일이 완성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된 시기였다. 그래서 강희제에게 반란자로 각인된 오삼계란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정치적 내지 역사적 평가를 제기한 것은 민감한 정치과제가 되었다. 청나라의 문인학자와 사가들이 문자옥을 의식해 가능한 한 피하려는 화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개 포의로서의 노가재는 이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오삼계에 대한 평가를 역사적 사실 문헌 자료와 현장에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오삼계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것을 명청 환대기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대의명분론적인 대명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청관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노가재의 이와같은 현실을 直視한 새로운 대청관의 형성은 그때 당시 뿐만 아니라, 후세의 북학파와 같은 실학자들의 대청 의식과 주장의 출현에 先驅的 역할과 중요한 啓示가 되었다.

Abstract

While NaoKaJai Kim ChangUp was traveling to China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he saw the prosperity of the Kang Xi Period by his own eyes and had been left a deep impression. It was a great chance for him to abandon the dated ideas of Ming dynasty , as well as to form a sound view towards China in Qing Dynasty based on the reality. During the war betwee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NaoKaJai realized that the Qing dynasty, especially the area out of Shanhai Pass was still in a mess. What was more, the contradiction between Manchu and the Han nationality had become a threat of the society. He knew that the collapse of the Ming Dynasty and the prosperity of the Qing Dynasty was inevitable. However, he had never analyzed how it came into being .By writing down just his own experience, he made many readers feel as if they were there. NaoKaJai traveled to China 30 years before the Kangxi Emperor unified the country. Therefore the loyalty and revolt of Wu Sangui was still a sensitive political issue at that time. However NaoKaJai was deeply concerned about it and made an objective evaluation as well. The failure of Wu made the Korean royal government and many scholars recognize the irreversiblility of history and the inevitability of the Ming dynasty’s prosperity, so that they decided to give up some old theories and began to face the reality. I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future of the Pract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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