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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壯公 鄭撥에 대한 再考察

The Re-study of General Jung-Bal(鄭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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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忠壯公 鄭撥(1553~1592)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釜山鎭僉節制使로서 부산에 첫 상륙한 왜군의 맹공에 맞서 決死抗戰하였던 장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그의 전투 행적이 왜곡되고 폄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참전 왜장과 조선 토병들의 증언으로 의혹이 벗겨진 이후에는 그에 대한 追贈과 顯彰이 계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개전 초기의 첫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적군에게 패배를 당한 정발의 경우, 그 공적을 제대로 인정받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참전 왜장과 포로였던 조선군 토병의 증언으로 인해 정발의 용맹한 활약상이 규명된 이후에도, 그가 무신이었다는 이유 만으로 문신인 동래부사 송상현에 비해 추증과 현창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미흡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점은 崇文賤武의 경향성이 조선시대에 분명하게 존재했었음을 드러내주는 증거가 된다. 정발에 대한 추증과 현창의 과정은, 호란 이후 북벌의식이 고조되면서 임진왜란 영웅들을 顯彰하려 한 당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송시열의 「묘갈명」을 통해 이러한 숭앙의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비록 계속적인 추증과 숭앙의 과정에서 정발이 무신이었기에 문신출신인 송상현에 비해 다소 차별을 당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으나, 추후 영조의 명령에 의해 정발과 송상현이 충렬사에 합사되면서, 결과적으로 존숭에 대한 文武差別이 없어지게 되었다.

Abstract

Jung-Bal(鄭撥) was a General of BuSanJinSung(釜山鎭城, BuSan-fortress castle) in the late 16th century, JoSeon period of Korea. He bravely fought against the Japanese army’s invasion in BuSanJinSung in 1592, and died gloriously in the battle of BuSanJinSung. After his death, he was accused of many rumors and slanders about his final battle. This paper shows us the truth of Jung-Bal’s life, especially the battle of BuSanJinSung. After Jung-Bal’s death, even though he was granted a posthumous conferment of honors as a ByungJoPanSeo(兵曹判書), his accomplishment was unappreciated because he was defeated by Japanese troops, and groundless rumors about his final battle. But in 1597, Yanakawa Sigenobu[柳川調信], who was a warrior of the japanese army, also praised Jung-Bal’s courage. In 1603, three soldiers of JoSeon army who fought with Jung-Bal in BuSanJinSung battle, testified Jung-Bal’s brave fighting. Because of this testament, he continues to get posthumous conferment of honors to this day. The process of adding the posthumous conferment of honors to Jung-Bal shows the atmosphere of admiring heros of the late JoSeon period. After the ignominious defeat by the troops of the qing(淸), the korean people wanted to win against foreign invaders. At the time they were powerless, war heros of JoSeon were in the limelight in the late Joseon period(17~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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