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기 도자 생산구조 및 유통의 전개와 양상
The Development and Aspects of Ceramic Production Structure and Distribution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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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자기 역사는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선관요인 分院의 체제 전환으로 인해 이전의 제작구조와 수요기반이 해체되어 새로운 틀로 재편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근대 도자의 실질적인 길목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서구의 신기술 수용이 요구되던 개화기의 상황에서 조선백자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공예의 개념을새롭게 정립하고 도자기의 용도를 다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시대상황은 한국 근대도자의서막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기(1897-1910)의 개화를 통해 근대화를이루려는 쟁점들이 대두되어 요업 전반에 새로운 도약이 생겨난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비록이 시기 역시 요업체제가 역동적으로 변화하지는 못했지만,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정책으로서공예산업의 활성화를 시도한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이후 근대도자공예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일제강점기는 일제의 간섭과 강요에 따른 구조의재편과정을 통해 도자 생산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한계에 부딪쳤고 결국 조선백자는 수요기반을 상실한 채 일제에 경도된 도자문화를 형성시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제 치하에서의 도자산업이 자율성을 대부분 상실하게 되자 수천 년 간 유지되어 온 백자제작은 정체성을 잃고 본격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 도자사에서 근대도자는 격동하는 國政과 함께하며 파란을 겪었고 급변하던 정세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던 조선의 운명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근대도자의 핵심형성기인 분원 민영화로부터 일제강점기의 흐름을 주축으로 하여, 이 시기에 전개된 제작상의 변화과정 및 한계를 이해한다면 한국 근대도자의 근대성을 파악하는데 한 발 다가갈 것이다.
Abstract
Entering the late 19th century, Korean ceramic history reorganized the system of the ceramic production and the demand-led management which had collapsed after the management changeover of Bunwon, Chosun's governmental kiln site. It is especially noteworthy that in the process Korea stepped into actual modern ceramic era. However, it was needed to bring in new technology of the West in Korea's Enlightenment(Gaehwa) period and it made the status of Chosun's white porcelain very shaky, and the lack of enough capability to establish a new concept of crafts and diversify the uses of ceramics made the beginning of Korean modern ceramic history gloomy. Of course, it is very meaningful that in this process, there was a new leap in the whole areas of the ceramic industry because of some reformers trying to accomplish modernization through the Enlightenment(Gaehwa) in the period of Daehan Empire(1897-1910). Even though the system of the ceramic industry in this period also didn't change dynamically, the fact that there was attempts to invigorate the ceramic industry as a part of the modernization policy for building up national strength has great significance.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occupation, which is the key part of Korean modern ceramic crafts history, the process of the system reorganization resulting from imperial Japan's interference and coercion caused more limitations in the ceramic production than any other time and Chosun's white porcelain eventually lost its base for demand-led system, which led to the formation of a Korean ceramic trend biased toward the Japan's. After Korean ceramic industry lost most of its self-regulation, the white porcelain that had been produced for thousands of years lost its identity and began to retrogress. As mentioned above, Korean modern ceramics underwent difficulties in Korean modern ceramic history along with the turbulent national politics and was controled by the fate of Chosun who couldn't cope with the troubled situation. Therefore, on the basis of understanding the key formative period of Korean modern ceramics that was from the privatization of Bunwon to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if the change process of the ceramic production and the limitations are understood it will be a step forward for understanding the modernity of Korean modern cera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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