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권기 조선공업 육성정책과 일본- 1960년대 대한조선공사의 222만불 조선 기자재 도입문제를 중심으로 -
Promotion Policies of Shipbuilding Industry in the Park Chung Hee Regime Period and Japan-Focusing on Introduction of 2,22 Million Shipbuilding Materials By Korea Shipbuilding and Engineering Corporation in the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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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박정희정권이 대한조선공사 -이하 ‘조공’으로 줄임-를 다시 공기업화 하고 ‘일본 요소’와의 결합을 통해 조선공업(造船工業)의 육성을 추진했던 1960년대 정책 전개과정을, 222만불의 일본 상업차관 도입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박정희정권의 국가주도 산업정책에 대한 평가 및 그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요소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1960년대 박정희정권의 조선공업 육성정책은, ‘국가의 강력하고도 효율적 개입’의 사례로 개발국가론자들이 흔히 거론하는 현대그룹 울산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1970년대 조선공업 육성정책보다, 국가의 개입정도가 훨씬 더 강력하고 전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222만불에 달하는 조선 기자재를 상업차관으로 도입하려는 정책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봤을 때 박정희정권의 조선공업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관성 없고 내부 모순적이기까지 한 정책추진과정은 조공 부흥에 걸림돌이 되었다. 한편 조선 최강국이자 인접한 거리에 있던 일본은, 1960년대 조선공업 육성을 위한 자본 및 기술 공급처로 박정희정권이 주목한 나라였다. 그러나 일본은 박정희정권이 기대한 만큼 협조적이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일본 민간해운업계의 한일항로 진출을 위한 해운협정 개정을 위해 222만불 조선 기자재의 수출승인을 보류하여 조공의 조선계획에 결정적 차질을 초래했다. 이런 모습은 제국주의적 경제 진출의 일면으로 평가한다면 지나친 것 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웃 나라와의 공존공영과 호혜의 원칙에 입각해서 선의의 원조를 제공한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본정부는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과정에서 철저하고 신중하게 국익을 따지고 민간 경제계의 요구를 대변하는 자세를 고수했다.
Abstract
This study was designed to review development process of policies in 1960’s what were established to promote shipbuilding industry by nationalizing ‘Korea Shipbuilding & Engineering Corporation’ (referred to as ‘KSEC’ below) again in the Park Chung Hee Regime Period and combining it with ‘Japanese components’ through introduction cases of 2,22 million commercial loan from Japan. Furthermore, it aims to assess industrial policies led by the Park Chung Hee Regime and examine Japan’s roles in the process. As cases of a ‘powerful and efficient intervention of nation’, the policies to promote shipbuilding industry in the Park Chung-Hee Regime of 1960's were much more powerful and general than those established in 1970’s focusing on Ul-san Shipyard of Hyundai Group what developmental state theorists frequently used to mention. However, industrial policies for promoting shipbuilding industry in the Park's Regime were not that efficient, considering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policies to introduce shipbuilding materials accounting for 2,22 million dollar as commercial loan. It was rather a big obstacle to revive KSEC, since the process to push ahead with the policies were extremely inconsistent and internally contradictory. On the other hand, the most powerful country in shipbuilding industry, Japan, located close to Korea was that the Park’s government paid attention to as a supplier of capital and technology. But Japan was not as cooperative as they expected. Japanese government caused serious failure in KSEC's shipbuilding plans by holding off exporting 2,22 million shipbuilding materials to revise the shipping agreement for Japanese private shipping companies to break into and advance to Korean and Japanese sea routes. It was definitely different from the official situation of Japanese government to provide well-meant aid based on the principle of live-and-let-live and reciprocity, although, this situation can be explained as part of an imperialistic economic buildup. Japanese government hanged on to their position to give priority to national interests thoroughly and carefully and speak for requests of private economic world during the concrete process of economic cooperation. Eventually, promotion policies in 1960’s what was to revive KSEC through powerful intervention of nation and highly depended on Japan, were inefficient and failed. This implies, researches which have stressed the efficiency of the national intervention and Japanese components during the industrialization led by the Park's Regime need to be applied very restrictively. Of course, it doesn’t mean that there was no significance in failure of these policies, because such political trials and errors had considerable effects on another promotion policies of shipbuilding industry in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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