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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將軍職의 형성과 운용

The Formation and Management of the Janggun Post in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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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신라의 장군은 전쟁 등 유사시에 君主의 군령권을 대행하기 위해 마련된 관직이었다. 군사력의 실질적 운용 근거인 군령권은 본래 君主의 고유한 권한으로, 신라에서도 초기에는 君主가 직접 전쟁을 수행했다. 이후 전쟁의 목적과 규모가 달라지고지배 체제가 정비되면서 전쟁 현장에서 君主를 대신하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관직으로서의 장군은 5세기 말에 설치된 좌·우장군을 그 제도적 기점이라고볼 수 있다. 단, 장군이 군사력을 지휘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君主가 필요에의해 자신의 군령권을 적합한 대상자에게 위임했기 때문이었고, 맡겨진 임무를 마무리한 후 장군으로 임명된 자에게 주어졌던 군령권은 곧 君主에게 회수되었다. 『三國 史記』에서 장군의 임명 자격을 다른 어떤 관직과도 다르게 上臣과 上堂이라는 관직으로 규정한 것도, 신라 조정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고위 관료가 상황에맞춰 한시적으로 장군으로 임명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지금까지는 중고기의 軍主 와 장군의 군사적 성격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軍主의 군령권은 관할영역에 대한 침공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방어에 나서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 대신 軍主는 상임 지방관으로서 평소에 담당하는 지역의 군사적 역량을 관리해야 했다. 반면 장군은 중앙에서 기획한 군사 행동의 실행자로서 임명과 함께 君主의 군령권을 받은 만큼, 권한의 행사 범위와 활동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아울러 장군에게는 전쟁 등에 수반되는 다양한 외교와 행정 관련 업무의 수행도 기대되었다.

Abstract

The Janggun of Silla was a government post designed to serve as a military commander of the monarch in times of war and other emergencies. It can be said that the origin of the Janggun post was the Left and Right Janggun established at the end of the fifth century. The military command authority, which is the basis for the actual operation of military power, was the unique authority of the monarch. The Janggun’s ability to command military power was due to the fact that the monarch had delegated his authority to a suitable target by necessity, and the military command authority given to the person appointed as a Janggun was soon recovered by the monarch after completing his assigned duties. Unlike any other government posts, the rules for appointment of Janggun post stipulated that the appointee should be one of the officials above a certain rank. It means that a high-ranking official who can participate in the decision-making of the Silla Dynasty was temporarily appointed as a Janggun. Meanwhile, so far, many have equated the military character of the Janggun with that of Gunju. But the Gunju’s military command authority did not exceed the level of immediate defense in the event of an invasion of the jurisdiction. On the other hand, as the Janggun was appointed as the executor of the centrally planned military action, the scope of exercise of his authority and the scale of his activities were relatively large. In addition, the Janggun was expected to carry out various diplomatic and administrative affairs related to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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