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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潭 丁時翰의 활동과 17세기 후반 南人學界

Jeong Si-Han and Namin School in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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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시한(1625∼1707)은 17세기, 한반도 중부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남인을 대표한다. 이황과의 학문적 인연을 모태로 하여 형성된 남인의 주 활동 무대는 경상북도였지만, 서울 경기 등 중부권에서도 적지 않은 남인들이 살고 있었다. 정시한은 원주에서 거주하며 이 지역의 남인 학풍을 확대함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정시한의 학문 활동은 몇 가지 점으로 집약된다. 하나는 변무록(辨誣錄)의 작성, 그리고 그를 통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할아버지 정호관의 정치활동과 연관하여 그의 집안에 들씌워진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려는 작업이었다. 정시한이 벌인 또 다른 학문 활동은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설을 옹호하는 작업을 활발히 펼친 점이다. 그는 사칠변증(四七辨證)과 같은 글에서 나타난 대로, 이황 학문이 이이의 학문과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점을 당대 조선학계에 알리려는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이때 그가 보인 활동은 이황의 학문에 대한 학리적 해석을 넘어 서인 학문을 조선사회로부터 구축(驅逐)한다는 정치적 성격까지 지니고 있었다.정시한의 학문활동은 17세기 후반, 중부권의 남인이 자기의 학문 영역을 확대하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정시한의 개성은 영남지역의 남인들과 적극 교류하는 가운데 이황의 사유를 토대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의 세계를 깊이 천착한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중부권의 남인들이 가지고 있던 학문적 관심은 허목의 고학(古學)에의 천착과 박학성(博學性), 유형원의 반계수록 저술과 새로운 국가상 모색, 윤휴의 새로운 경서 해석 등에서 볼 수 있듯,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전개되었다. 그 성취 또한 괄목할 만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시한의 성과 또한 이 시기 남인들의 사유 세계를 한층 고양하고 확대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Jeong Si-Han and Namin School in the 17th century / Jeong, Ho-hoon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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