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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와 건국멸망연대로 살펴본『제왕운기』의 역사계승의식

The Historical Succession Consciousness of Jewangungi(帝王韻紀) Examined by the Name of the Countryand the Years of Its Founding and De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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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는 고구려 건국연대, 발해의 건국연대와 멸망연대를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보았다. 『제왕운기』 본문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으로 보았지만 『제왕운기』 백제기의 각주에서는 고구려 건국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았다. 이 글은 바로 기원전 107년에 주목한 글이다. 고구려 건국 기원전 107년은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과 1년 차이다. 고조선 멸망 후 고구려가 바로 이어서 건국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 멸망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고조선의 멸망연대와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같게 된다. 발해의 건국은 698년이 아닌 684년으로 보았다. 발해의 멸망연대는 일반적으로 『요사』에 근거해 926년으로 보고 있지만 『제왕운기』와 『고려사』 등 우리 측 기록은 925년으로 보고 있다. 발해 건국은 668년 고구려 멸망과 20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제왕운기』는 기존의 고구려 건국과 발해의 건국 연대를 앞당겼는데 결과적으로 앞 나라인 고조선과 고구려의 간극, 고구려와 발해의 간극을 좁혀 두 나라 사이의 역사계승의식을 보다 높여 주었다. 『제왕운기』는 국호의 계승성도 강조하였다. 궁예의 고려를 ‘후고구려’가 아닌 ‘후고려’라고 함으로써 궁예의 후고려에 앞서 ‘전고려’가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고구려를 ‘전고려’라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고, 고구려가 바꾼 나라이름 고려를 궁예가 사용했고, 왕건이 또 사용했음을 알려주었다. 『삼국사기』에서 궁예의 고려 건국을 숨기고 ‘고구려-마진[태봉]-고려’로 보았다면 『제왕운기』는 고구려-후고려-고려로의 국호 전개과정으로 보여줌으로써 ‘고려’란 국호가 면면히 계승되었음을 보여주었다.

Abstract

Jewangungi indicated a view regarding the founding year of Goguryeo and the year of founding and destruction of Balhae that differed from the general opinion. The main text of Jewangungi dates the foundation of Goguryeo as 37 B.C., but the footnote in the Chapter Baekje shows the founding date of Goguryeo to be 107 B.C. This article is focused on the significance of the date of 107 B.C. The founding date of Goguryeo in 107 B.C. is only one year from the year of 108 B.C. when Gojoseon was destroyed, which means that Goguryeo was founded immediately after the fall of Gojoseon. The fall of Gojoseon is sometimes regarded as 107 B.C., but in this case, the year of the fall of Gojoseon and the year of the founding of Goguryeo are the same. The founding of Parhae was seen as 684, not 698. In the case of Balhae, there is only a 20-year gap between the fall of Goguryeo in 668. Jewangungi moved up the founding dates of Goguryeo and Balhae, and as a result, it narrowed the gap between Gojoseon and Goguryeo, and between Goguryeo and Balhae, thereby emphasizing the sense of historical success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 date of the fall of Parhae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926 based on Yosa but Korean records such as Jewangungi and Goryeosa specify the year as 925. These texts seem to have emphasized the year 925 when Parhae returned to Goryeo rather than the year 926 when Parhae was destroyed by the Liao Dynasty. Jewangungi also emphasized the succession of country names. By referring to Gungye’s Goryeo as “later Goryeo” rather than “later Goguryeo”, the text makes known that there was a “earlier Goryeo” before Gungye’s later Goryeo. However, Jewangungi did not refer to Goguryeo as “pre-Goryeo”. However, it was reported that Goguryeo changed the name of the country to Goryeo, which was used by Gungye and Wang Geon. Whereas Samguksagi hides the founding of Goryeo by Gungye and sees the sequence as “Goguryeo-Majin [Taebong] - Goryeo”, Jewangungi shows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country name from Goguryeo to Later Goryeo and finally Goryeo, to make evident that “Goryeo” was the country name that was steadily inher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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