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 대성팔족(大姓八族)과 예(禰)씨
The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and Ni’s Family Name(禰氏) of Baekje(百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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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 대성팔족(大姓八族)은 중국(中國) 사서(史書)에서 확인되었으며, 총 6곳에 기록되었다. 기존에는 『통전(通典)』의 기록을 바탕으로 백제(百濟)의 대성팔족(大姓八族)을 파악했고, 그 결과 목(木)과 협(劦)을 합쳐서 하나의 성씨(姓氏)로 이해했다. 그러나 목협(木劦)만 복성(複姓)으로 기록되었다는 점과 대성팔족(大姓八族)이 기록된 순서가 이상하다는 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성팔족(大姓八族)에 관한 정보는 중국(中國) 사서(史書)의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동이전(東夷傳)」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대부분 이전에 작성된 기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이는 백제(百濟)에서 파견된 사신이 중국(中國) 관련 정보를 전달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隋書(수서)』에 처음으로 대성팔족(大姓八族)이 기록되었다. 『隋書(수서)』에 기록된 대성팔족(大姓八族)은 『통전(通典)』에 기록된 협(劦)씨가 리(刕)씨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隋書(수서)』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북사(北史)』와 『한원(翰苑)』에도 협(劦)씨가 아닌 리(刕)씨로 기록되어 있다. 『隋書(수서)』 『북사(北史)』 『한원(翰苑)』이 7세기 초에 작성된 사서(史書)라는 점에서 8세기에 작성된 『통전(通典)』보다는 정확할 것으로 보이며, 백제(百濟)가 멸망하기 전에 전달된 내용이 당시 백제(百濟)의 상황을 잘 반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협(劦)씨가 아닌 리(刕)씨를 검토한 결과 발음상 유사한 예(禰)씨가 주목되었다. 예(禰)씨는 ‘ni’로 발음된다. 리(刕)씨가 ‘li’로 발음된다는 점에서 예(禰)와 리(刕)의 발음은 ‘n’과 ‘l’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현대에 있어서 「ㄴ(n)」과 「ㄹ(l)」의 차이다. ‘ㄴ(n)’과 ‘ㄹ(l)’이 서로 통용되기에 예(禰)와 리(刕)는 같은 소리를 가진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리(刕)가 아닌 예(禰)를 쓴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리(刕)보다는 비슷한 발음에 의미가 좋은 예(禰)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게다가 백제(百濟)에서는 예(禰)씨가 중국에서 발견된 묘지명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들 중에는 백제(百濟)에서 가장 놓은 좌평(佐平)을 역임하였고, 대대로 좌평(佐平)이었다는 점에서 예(禰)씨가 백제(百濟) 사회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백제(百濟)가 멸망할 당시 그들의 위상을 살펴보면 禰씨가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Abstract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of Baekje(百濟) was confirmed in Chinese history books and recorded in six places in total. In previous research, family name(姓氏) of Baekje(百濟) was grasped based on the record of 『Tongdian(通典)』. Furthermore, I understood by connecting Mok-Hyeop’s family name(木劦氏). However, there is a problem in that the order of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recorded in the librarian is strange, with the Mok-Hyeop’s family name(木劦氏) becoming 7 instead of 8 in Baekje, and the family names are not distinguished. Information about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appears for the first time in 『Suishu(隋書)』. Most 「Dongyizhuan(東夷傳)」's follow the contents of previous history books. However, regarding the addition of the new content, it was judged that the envoy dispatched from Baekje(百濟) must have conveyed the information about Baekje(百濟) to China, and as a result,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was recorded. In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of Baekje(百濟) recorded in 『Suishu(隋書)』, family name(姓氏), which is said to be the Hyeop’s family name(劦氏) in 『Tongdian(通典)』, is written as Li’s family name(刕氏). Li’s family name(刕氏) is the letter pronounced ‘li’. Therefore, after examining the pronunciation of a surname similar to ‘li’ and a surname that has served as japyong(佐平) at least once, Ni’s family name(禰氏) is attracting attention. Ni’s family name(禰氏) is pronounced ‘ňi’ or ‘ni’. Compared to Li’s family name(刕氏),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n’ and ‘l’. This can be said to be the difference between “ㄴ(n)” and “ㄹ(l)” in modern times. It is thought that ‘ㄴ(n)’ and ‘ㄹ(l)’ are mutually accepted, and ‘li(Li’s family name(刕氏))’ and ‘ni(Ni’s family name(禰氏))’ are the same sounds. Finally, we considered why Li’s family name(刕氏) changed to Ni’s family name(禰氏). It was not used very often because there were no government officials. I used the simple letter “Li’s family name(刕氏)” because I borrowed the pronunciation of “A.” However, he speculated that over time he abandoned Li’s family name(刕氏), which was rarely used, and used Ni’s family name(禰氏), which had similar sounds but meaningful sounds, by family name(姓氏). The Ni’s family name(禰氏) of Baekje can be confirmed by ‘Yegun’s epitaph(禰軍墓誌銘)’ and ‘Yesikjin’s epitaph(禰寔進墓誌銘).’ According to the epitaph, they all held the post of japyong(佐平), and their grandfather and father were also japyong(佐平). This shows that the Ni’s family name(禰氏) had established a strong influence in the Baekje society. Especially, looking at their success at the time of the fall of Baekje, it can be said that the Ni’s family name(禰氏) was a comparable group as one of the Great Eight Families(大姓八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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