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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초기 왕계에 대한 이해 - 고이왕과 근초고왕을 중심으로 -

An Understanding of the the early royal family of Baekje - With King Goi and King Geunchogo at the 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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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초기 왕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제 초기 왕계가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초기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백제 초기 기록을 비교·검토한 결과 시기는 검토가 필요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순서는 대체로 믿을 수 있다. 또 후대의 기사가 미리 보입되어 기록된 이유는 『삼국사기』 찬자들의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고이왕과 근초고왕은 백제 초기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왕이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전성기를 구사한 왕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이왕은 좌평 분화 및 16관등 제정, 복색 제정 등의 업적을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고이왕 관련 기록은 후대의 기록이 보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이왕 시기에 왜 후대의 기록이 보입된 것일까. 고이왕 시기 백제는 낙랑과 끊임없이 대결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고학 유물을 보면 중국 및 낙랑계 위세품이 한강유역 백제에서 보이지 않기에, 낙랑이 백제를 견제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 있던 유이민과 낙랑·대방군의 유민들은 백제에 있어 매우 소중한 인적 자원이었다. 이를 이해하고있던 고이왕은 끊임없이 낙랑의 사람들을 원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낙랑에게 백제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을 원하고, 낙랑의 지역을 공격했다는 점은 백제가 낙랑의 인적 자원을 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이왕의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로 미루어 보면 고이왕 시기 좌평 분화 및 16관등 제정, 복색 제정이 완성되지는 못해도,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이왕 시기 국가의 틀을 만들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삼국사기』 찬자들은 고이왕 27년 조에 관련 기사를 보입함으로써 고이왕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In order to understand the early royal family of Baekje, it is necessary to solve the basic problem of how far the early records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三國史記)』 and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三國遺事)』, which are recorded in the early royal family of Baekje, can be trusted. As a result of comparing and reviewing the initial records of Baekje, the timing needs to be reviewed, but the order in which the event occurred is generally reliable. In addition, the reason why later articles were submitted and recorded in advance is that the intentions of the supporters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were reflected. ‘King Goi’ and ‘King Geunchogo’ are very important kings to understand early Baekje. ‘King Geunchogo’ is understood to be the king who used the heyday of Baekje. It is recorded that ‘King Goi’ made achievements such as the Joapyung-system eruption, The 16 official ranks, and dress color system. However, the records related to A were later recorded. Then, why were later records sent in during the A period? During the ‘King Goi’ period, Baekje constantly competed with Nakrang, but on the other hand, he wanted to receive advanced Chinese culture. However, if you look at the archaeological relics found in the surrounding area, it is thought that Nakrang checked Baekje because Chinese and Nakrang-based prestige items are not seen in the Hangang River basin Baekje. Yuimin in China and Yuimin in Nakrang and Daebang-gun were very valuable human resources for Baekje. King Goi, who understood this, constantly wanted the people of Nakrang.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三國史記)』's records show that Baekje does not seem to be able to use his strength to Nakrang, but the fact that he wanted people and attacked the area of Nakrang allows us to know that Baekje wanted Nakrang's human Judging from this series of efforts by ‘King Goi’,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Joapyungsystem eruption, The 16 official rocks, and dress color system were not completed during the King Goi period. It attempted to create a national framework during the ‘King Goi’ period. For this reason, it seems that the authors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三國史記)』 intentionally intended to show the achievements of ‘King Goi’ by recording related articles in the 27th edition of ‘King G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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