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 정치체제의 성립과정과 구조적 특질
百濟初期政治體制の成立過程と構造的特質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백제사의 전개과정에서 3세기 후반 고이왕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특히 정치사적인 측면에 서는 佐乎制와 官等制의 정비가 이루어진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백제 정치기구의 골격이 이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고이왕대에만 주된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그 이전 시기의 정치구조와 고이왕대의 정치구조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진한 편이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우선 고이왕대 이전의 정치구조에 대해 左·右輔制를 중심으로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초고왕대 후반부터 주변 소국의 자치력이 통제당하여 小聯盟國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소연맹국 단계에서의 원활한 정국운영을 위해 고이왕대 초반에 우보가 설치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우보의 역할은 소연맹국에 참여한 수장층들의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의 실행에 있어 필요한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한편 좌평에 대해서는 그간 관료 내지 중앙정치기구적 성격을 부각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본고에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 초점을 두어 좌평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고이왕대의 백제가 연맹왕국을 형성하긴 했지만, 당시 복속된 소국들은 아직 일정 정도 자치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 좌평의 성격에 대해서도 재지 수장층들이 그들의 세력기반을 유지한 채 국정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수여받은 칭호로 보는 것이 가능하게 돤다. 즉 좌평이 처음 설치될 당시에는 국왕 휘하의 일원적 관등제에 포함된 존재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당시 국왕 중심의 일원적 관료제를 목표로 정비된 것은 率系 이하의 관등이었다. 따라서 연맹왕국시기 백제의 정치는 국왕과 좌평을 칭한 세력들이 南堂에 모여 주요 국사를 의논하고, 그 실무적 처리는 솔계 이하 관등 소지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고이왕대의 정치기구 정비는 좌평 및 솔계 이하 관등의 설치, 그리고 남당회의의 탄생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모두 국가 규모의 확대에 따른 조치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기존의 좌·우보제를 확대·개편하여 좌평제가 성립했다고 말하지만, 본고에서의 검토 결과에 따르는 한 우보가 지녔던 행정 관료적 성격은 솔계 이하 관등 소지자에게 넘어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소연맹국 시기 후반과 연맹왕국 시기의 정국운영 방식은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면, 본질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백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연맹왕국에 가담한 주요 세력의 수장층들이 모두 정국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5부 혹은 5부의 지배층들만이 정국운영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고구려·신라의 정치구조와는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
참고문헌 (56)
- "三國史記", ~
- "三國志", ~
- "通典", ~
- "令集解", ~
- 강종원, "4세기 백제사 연구" (2002), 서경문화사
- 김기섭, "백제와 근초고왕" (2000), 학연문화사
- 金瑛河, "韓國古代社會의 軍事와 政治" (2002),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 盧重國, "百濟政治史硏究" (1988), 一潮閣
-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1999), 사계절
- 문동석, "백제 지배세력 연구" (2007), 혜안
-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2004), 한나래
- 全德在, "新羅六部體制硏究" (1996), 一潮閣
- 姜鍾元, "百濟 左將의 政治的 性格", 百濟硏究, 29 (1999)
- 姜鍾元, "百濟 比流王의 卽位와 政局運營", 韓國上古史學報, 30 (1999)
- 金起變, "百濟의 佐平 試論", 淸溪史學, 13 (1997)
- 金杜珍, "韓國古代의 國家와 社會" (1985), 一潮閣
- 김영심, "漢城時代 百濟 佐平制의 전개", 서울학연구, 8 (1997)
- 김영심, "百濟 官等制의 成立과 運營", 國史館論叢, 82 (1998)
- 金哲後, "韓國古代社會硏究" (1975), 知識産業社
- 金翰奎, "衛滿朝鮮關係 中國側史科에 대한 再檢討", 釜山女大 論文集, 8 (1980)
- 盧重國, "韓國史論" (1978), 서울大 國史學科
- 盧重國, "高句麗國相考(上)", 韓國學報, 16 (1979)
- 盧重國,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3), 知識産業社
- 盧重國, "『한국사』6" (1995), 국사편찬위원회
- 노중국, "『강좌 한국고대사』2" (2003),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盧泰敦, "『韓國史論』2" (1975), 서울大 國史學科
- 盧泰敦, "『한국사』2" (1978), 국사편찬위원회
- 노태돈, "초기 고대국가의 국가구조와 정치운영 - 부체제론을 중심으로 -", 韓國古代史硏究, 17 (2000)
- 노태돈, "단군과 고조선사" (2000), 사계절
- 문동석, "4〜5世紀 百濟 政治體制의 變動", 韓國古代史硏究, 9 (1996)
- 문동석, "4세기 백제의 지배체제와 좌평", 역사와 현실, 42 (2001)
- 박기범, "백제 연맹왕국의 구조와 형성요인에 대한 재검토",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발표문 (2009)
- 박기범, "백제 연맹왕국의 정치구조 연구", 석사, 사학, pp.2009
- 박대재, "백제초기의 회의체와 南堂", 한국사연구, (124), pp.1~30 (2004), 한국사연구회
- 박순발, "墓制의 變遷으로 본 漢城期 百濟의 地方 編制 過程", 한국고대사연구, (48), pp.155~186 (2007), 한국고대사학회
- 梁起錫, "百濟專制王權成立過程硏究", 博士, pp.1990
- 梁起錫, "百濟 泗沘時代의 佐平制 硏究", 忠北史學, 9 (1997)
- 余昊奎, "1-4세기 고구려 政治體制 연구", 박사, 국사학, pp.1997
- 李基東, "百濟史硏究" (1996), 一潮閣
-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 李鍾旭, "百濟王國의 成長 - 統治體制의 强化와 專制王權의 成立 -", 大丘史學, 12·13 (1977)
- 李鍾旭, "百濟의 佐平 - 三國史記를 중심으로 -", 震植學報, 45 (1978)
- 전덕재, "신라 화백회의의 성격과 그 변화", 역사학보, (182), pp.1~31 (2004), 역사학회
- 정동준, "백제 정치제도사 연구", 박사, 한국사, pp.2008
- 정동준, "백제 초기 관제(官制)의 성립과정 - 좌(左)·우보(右輔)와 좌장(左將)·좌평제(佐平制)를 중심으로 -", 역사와 현실, (70), pp.111~142 (2008), 한국역사연구회
- 朱甫暾, "百濟史上의 戰爭" (2000), 서경문화사
- 千寬字, "三韓의 國家形成(下) -「三韓攷」第3部 -", 韓國學報, 3 (1976)
- 鬼頭淸明, "日本古代の社會と經濟(上)" (1978), 吉川私文館
- 武田幸男, "朝鮮三國の國家形成", 朝鮮史硏究會論文集, 17 (1980)
- 武田幸男, "『東アジア世界に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4" (1980), 學生社
- 石母田正, "日本古代國家論" (1973), 岩波書店
- 井上光貞, "日本古代國家の硏究" (1965), 岩波書店
- 井上秀雄, "百濟の身分制について", 百濟硏究, 26 (1996)
- 黑田達也, "朝鮮·中國と日本古代大臣制" (2007), 京都大學學術出版會
- 黑田達也, "朝鮮·中 國と日本古代大臣制" (2007), 京都大學學術出版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