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통치기 건축물 용(龍)장식에 내재된 정치성-발톱수와 장식기법을 통하여
The Political Character Inherent in the Dragon Decoration of the Palaces during the Reign on King Kojong: through the Number of Claws and Decoration Tech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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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고종 통치기(1863-1907)동안 건축 장식으로 사용된 용 장식의 조형적 변화를 통해 정치적 의미를 추출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고종 통치시기’, ‘발톱수’, ‘조각기법’이라는 세 가지 논점을 교차시키면서 고종대 건축물(경복궁·원구단·경운궁)에 장식된 용 장식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분석했다. 첫째, 고종통치기는 입체적인 용조각이 신축된 본격적으로 배치되는 시기이다. 입체적으로 조각한 오조룡은 중국 황실 건축에서만 사용한다는 규제가 존재했고 조선왕실에서도 이러한 규제에 순응했으나, 고종 통치기간에 이를 탈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자 한 정치적 의도를 보여준다. 둘째, 건축물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용 조각상의 발톱 개수가 결정된다. 고종 통치기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건축물에 장식된 용의 발톱 수가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과정에서 오조룡, 칠조룡, 팔조룡이 건축물조각 장식으로 등장했다. 용의 발톱 개수라는 요소는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왕과 그 이상의 존재들(천제-조상-황제-왕)간의 상호 위차 구분 등 복합적인 정치·외교적 상황 속에서 결정되었다. 즉 최고의존재인 왕(황제) 그리고 그보다 높은 존재(천제·명 황실의 황제·대한제국 황제의 조상신)들 간의 관계속에서 상호 위차를 구분했고 이를 용의 발톱수로 표현했다. 셋째, 조선(대한제국)과 명·청은 용이라는 동일한 장식 소재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발톱 개수(3·4·5·7·8개)와 장식방법(평면·입체)을 구분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로 결합시켜 권력의 차등을 시각화했다. 고종 통치기에 이르러 황제의 공간에서만 허용된 입체기법과 오조라는 조형적 코드를 결합한 용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중국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칠조와 팔조의 용 장식을 입체적 조각기법과 결합시키기도 했다. 고종 통치기의 건축물 용장식은 국내와 국제정세가 요동치면서 변화된 상징물이 필요한 상황에서 왕실(황실)의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점차 용의 표현방식이 체계화되어, 대한제국기에는 황제의 공간에 부합하는 발톱 수를 가진 용 장식들이 합당한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Abstract
The study is about extracting the characteristics and their political significance of the dragon’s decoration, which was decorated in architecture during the reign of King (emperor) Kojong(1863-1907). The three points of “the reign of King Kojong,” “the number of claws” and “the method of sculpture” were crossed, and the decorations of dragons decorated in the buildings of King Kojong (Gyeongbok Palace, Wondan Pavilion, and Gyeongun Palace) were analyzed in a complex way. First, the reign of King Kojong was a time when three-dimensional dragon sculptures were placed in courts. Although there was a regulation that three-dimensional five-claws dragon(Ojoryong) was used only in the construction of the Chinese imperial family and the Joseon royal family complied with the regulation. But it began to break away from it during the reign of King Kojong. Second, depending on the nature and purpose of the courts, the number of claws of the dragon statue is determined. During the reign of King Kojong, the number of dragon claws decorated with buildings was maintained or increased, and five-claws dragon(Ojoryong), seven-claws dragon(Chiljoryong) and eight-claws dragon(Paljoryong) emerged as pieces of architecture. The element of the dragon’s claw count was determined in a complex political and diplomatic situation, including diplomatic relations with China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he emperor and emperor’s ancestors and the king’s mutual hierarchy. Third, Joseon (the Korean Empire) and Ming and Qing shared the same dragon decorations. At the same time, the number of claws (3, 4, 5, 7, 8) and the method of decoration (flat and threedimensional techniques) were distinguished, and then combined into various numbers of cases to visualize political authority classically. During King Kojong’s reign, he began to use a dragon decorations combining the three-dimensional technique and the typographical code of fiveclaws(Ojo), which were allowed only in the emperor’s space. In addition, the dragon decorations of seven-claws(Chiljo) and eight-claws(Paljo), which do not exist in China, were combined with stereoscopic tech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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