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山誌』(1964) 편찬과 고산지역 艮齋門人의 역할
The Compilation of Gosanji(1964) and Ganjae School’s Role in Gos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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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64년에 편찬된 『고산지』는 옛 고산현에 거주하였던 유력가문의 후손과 간재문인이 주도하여 조선시대 읍지편찬의 전통을 계승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당시 고산현은 1895년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폐읍되고 1914년 이후 완주군으로 편입되었다. ‘고산현’이라는 독자적 행정구역이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산현민’이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던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고산지』라는 이름으로 읍지를 간행하였다. 『고산지』의 체재는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의 읍지와 유사하지만 인물 관련 항목에서 그 비중과 내용이 차이가 난다. 『고산지』의 ‘인물조’는 이전의 읍지에 비해 그 항목이 더욱 세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읍지에서는 ‘인물’이라는 항목으로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고산지』는 ‘인물’ 항목을 謫居, 僑居, 名宦, 鄕賢, 遺逸, 文科, 武科, 生進科, 蔭仕, 壽職, 贈職, 才學, 節義, 義擧, 孝行, 慈善, 賢媛, 孝婦, 烈女, 貞節로 세분하여 항목별로 고산의 주요인물을 재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과 관련된 항목이 『고산지』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며, 수록된 인물의 80% 이상이 19세기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 『고산지』는 고산향교에 출입하는 능성구씨를 비롯한 고산의 유림들이 적극 참여하여 편찬된 읍지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艮齋 田愚의 문인으로서의 학문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유림이었다. 『고산지』 편찬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간재의 嫡傳, 再傳弟子들은 고산항교의 전교와 장의 등을 맡고 있던 직원으로 고산향교를 기반으로 유도회 고산지부의 회장 및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고산의 유림을 비롯한 간재문인은 김창숙을 중심으로 유도회에서 주도한 ‘위패매안’에 반대하고 위패복원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결속하였고, 이후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는 작업을 추진하여 읍지와 서원지 등을 편찬, 간행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유교적 전통’을 계승하는 방편으로 지방지 편찬사업을 추진하여, 해방과 한국전쟁 등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전근대사회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과 연속이라는 인식으로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것이다.
Abstract
Ganjae School in Gosan area published 『Gosanji』 in 1964. At that time Gosan lost it's administrative position, because of reorganization of the nation's provincial government system in 1895 and inclusion to Wanju province in 1935. However, Gosan's residents have maintained local identity themselves. To remember their local history and culture, they decided to compile 『Gosanji』 and work together. Ganjae School tried to succeed to Confucian tradition. For this the member of Ganjae School who protected Confucian values and dignity collected writings about their own region and compiled the materials into a book. More important thing is that they also recognized Korea's tumultuous modern history as the continuity of history, not the age of discontinuity. The composition of 『Gosanji』 almost resembles a Uepji(town chronicles) published in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As for persons included in 『Gosanji』, there was a gap between 『Gosanji』 and other Uepji, furthermore character and emphasis is very different. The persons of 80% included in 『Gosanji』 lived in the 19th century. In the end, 『Gosanji』 could be a record of people in loc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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