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집』에 담긴 이유장(1625~1701)의 모습 — 명현의 발견, 가문과 학문 전통의 개발
The Image of Yi Yujang (1625-1701) Contained in 『Gosan Collection』 — Discovery of an Eminent Sage, Development of Family and Academic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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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조선 17세기를 살았던, 특히 전환기라 할 수 있는 17세기 후반에 활약한 이유장의 활동 내용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세상을 떠나고 2세대 뒤쯤 되는 1775년(영조 51) 간행한 문집을 이용하여 그의 학문에 대한 가치와 전통의 발견 내용을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그가 당시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과 내용이 시간이 흘러 간행한 문집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살피기 위한 목적도 있다. 따라서 그의 문집 고산집을 꼼꼼히 읽고 편집의 방향이나 새로이 해석한 내용을 확인한다. 이유장은 17세기 후반 두 번의 전쟁 이후 사회가 재편되는 시기에 성리학적 가치를 독실히 실천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와 입신양명과 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민했던 흔적을 그의 문집에서 어렴풋이 살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18세기 중엽에 간행한 그의 문집에는 이상적 인물로 형상화 하려했던 편집 방향이 있었다. 대표적으로서론에서언급하였듯이 그를 ‘학’과 ‘고니’로 상징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문인들과 후학들이 그를 은일 처사로서 고고한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한 인물로 형상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산집에서 후학들은 이유장의 행적에서 ‘학’, ‘고니’ 그리고 ‘고산孤⼭’으로 형상화 하면서 ‘징사徵士’라는 명형을 발견하였다. 이런 노력은 곧 조선후기 예안이씨 가문과 그의 후학들에게 하나의 전통을 발견한 성과였고, 이 성과를 문집에 고스란히 담았다.
Abstract
Yi Yujang,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after two wars, sought to diligently practice Neo-Confucian values during a period of social reorganization. Nonetheless, traces of his inner struggles are also evident, as he grappled with the impossibility of ignoring reality. When his collected works were published in the mid-eighteenth century, as mentioned in the preface, literati shaped his image as a lofty Neo-Confucian recluse, symbolized by the crane and swan. These accounts of Yi Yujang’s life and the content in later anthologies represented him as “Gosan,” and the distinguished designation “Jingsa” emerged. This became a tradition for the Yaean Yi clan and his followers, discovering a shared heritage and academic legac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