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사회의 설교강단에서 실천적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ractical Communication in the Preaching Pulpit of the Nano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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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사회’는 개별적 특수성이 분열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노사회에서 교회 공동체 설교강단은 분열된 개별성을 하나로 연합하여 묶는 명확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선포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서의 메시지와 그 내용을 담는 케리그마 전달을 포괄적이고 좀 더 포용적인 방식의 언어 및 비언어 수단의 수사학적 실천으로 가능해 질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나노사회의 개별적인 특수성을 너머서서 공동체를 인식하는 관점은 중요하다. 이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가 공동체의 중요성을 추구하면서 ‘교회주의,’ 혹은 자립 교회의 ‘집단주의’로 발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간과한다면, ‘우리’만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공동체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그리고 설교강단의 메시지가 ‘우리’ 우월주의에 빠지게 되는 양상은 설교가 추구하는 하나님나라를 분열케 하여 결국 성서 메시지의 본질을 놓치게 만든다. 설교는 ‘우리’ 안에 머문 하늘나라가 아니라, ‘우리’를 너머서서 ‘온 누리’를 지향하는 선포가 되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설교강단은 ‘우리’만 이해하는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교회 외에 있는 잠정적인 크리스챤도 함께 ‘우리가’ 될 수 있는 소통의 언어로 교류되어야 한다. 즉 설교강단은 세상을 향해 선포되고 ‘그들이 들을 수 있는’ 포괄적인 언어가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설교강단의 언어’는 잠정적 미래의 크리스챤을 위한 배려와 이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가운데서도 여전히 신앙 공동체의 언어가 ‘우리만의 언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설교강단은 ‘세상을 향하여’ 결국에는 제한된 소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나노사회에서 공동체를 향한 설교의 소통방식은 교회 안과 밖 어디에서도 함께 교류할 수 있는 형태를 가져야 하며, 이것은 파편화된 개인과 사회가 비로소 하나 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비전이 된다.
Abstract
‘Nano-society’ has a characteristic in which individual specificity appears as division. In the nano-society, the preaching pulpit of the church community must proclaim the clear Gospel of Jesus Christ that binds divided individuals into one. This will be possible through the rhetorical practice of verbal and non-verbal means in a comprehensive and inclusive way to deliver the message of the Bible and the Kerygma containing its contents. At this level, the perspective of recognizing the community in the individual specificity of the nano-society is important. At this time, what needs to be approached carefully is that the church community must be careful not to develop into 'churchism' or 'collectivism' while pursuing the importance of the community. If we forget this, it can become a selfish 'communalism' that only 'us' matters. And the message of the preaching pulpit falling into 'us' supremacy divides the kingdom of God. The preaching should be a proclamation that goes beyond 'us' and aims for 'all the world', not the kingdom of heaven that stays in 'us'. In other words, the preaching pulpit is to become the Lord's witness 'to the ends of the earth', and it is not limited to 'only me' or 'only us'. Therefore, the communication aimed at by the church community in the nano-society should block the ecclesiastical division that only thinks of 'our' community, and should be the communication of the pulpit that is 'one in Jesus Christ'. The preaching pulpit should be an environment where people can freely communicate in a common language that can be heard to the world. To do so, the 'language of the pulpit' must be considered and sacrificed for potential future Christians. In the midst of this recognition, if the language of the faith community still fails to escape from the fence of ‘our own language’, the pulpit will eventually become a meaningless sound ‘toward the world’. Therefore, the communication method of preaching toward the community in the nano-society should have a form that can be exchanged anywhere inside and outside the church. This can be a vision that can bring fragmented individuals and society one step closer to the community of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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