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대 星州 安峯寺의 儒佛儀禮
The Confucian and Buddhist Rituals of Seongju Anbongsa in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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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사 영당제례는 설행의 주체와 방식에 따라 영당예제(影堂例祭)⋅영당별제(影堂別祭)⋅영당절일제(影堂節日祭)로 구분된다. 영당예제는 매년 2월에 정기적으로 거행하였고, 영당별제는 성주 이씨 문중의 한 개인이 특별히 거행하였으며, 영당절일제는 이문건의 요청에 따라 안봉사의 승려가 동지(冬至)에 거행하였다. 영당예제는 절 살림을 주관하는 삼보(三寶)를 맡은 안봉사 승려가 제사상을 준비하면 성주 이씨 내외손이 참석하여 유교제례의 절차에 따라 설행하였다. 하지만 제사에 술 대신 차를 사용하고 안봉사 삼보가 집사(執事)로서 참여하거나 직접 행사(行祀)하는 경우가 있어 유교제례에서 불교적 요소가 병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안봉사 승방을 조성하고 거행된 회향불사(會餉佛事)에는 이문건 가문의 조선망령(祖先亡靈)에 대한 시식(施食)을 겸행하였으며, 이문건은 시식의례에 사용되는 기문(記文)을 써주는 방식으로 의례에 참여하였다. 이문건의 아들인 이온(李熅)의 칠칠재(七七齋, 사십구재)는 소재(小齋)의 규모로 승려 희오(熙悟)가 안봉사 법당에서 설행하였으며, 이문건은 백미 10두를 보냈을 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노(奴) 귀손(貴孫)을 대신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문건은 역병(疫病)⋅상사(喪事)가 있어 조상들의 제사를 지낼 수 없을 때 안봉사에서 대신 기일시식(忌日施食)을 설행케 하였으며, 먼저 죽은 아들 이온(李熅)의 기일시식에는 승재(僧齋)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특히 안봉사의 첫 기일시식이 왕실의 기신재(忌晨齋) 복설 직후에 이뤄지고 중종대 이후 사대부 가문에서 사라진 승재가 명종대 이온의 기일시식에 설행된 사실은 사대부 이문건의 불교신앙적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구명시식(救命施食)은 복인(卜人)의 점괘에 따라 안봉사 승려가 설행하여 당시 무속과 불교의례의 상호공존 양상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유교제례와 불교의례가 함께 설행된 불교사찰 안봉사는 16세기 명종대 유교와 불교의 문화적 공존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I tried to analyze the Confucian and Buddhist rituals performed at Anbongsa(安峯寺) as a nationally certified temple in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of Joseon Dynasty. For this analysis, this paper examined the historical records on the Anbongsa(安峰寺) in the mukjaeilgi(默齋日記), Confucian literati Lee Mun-Gwon(李文楗, 1495~1567)’ diary. First, the Lee family of Seongju(星州 李氏) hold the ancestral rites regularly in Anbongsa each February on the basis of Confucian traditions. But, Anbongsa-Sambo(三寶) in charge of temple affairs prepared food for ancestral rites table, and during the ritual they used a Buddhist tea instead of Confucian alcohol. Moreover, Anbongsa-Sambo assisted Hungwan(獻官) and performed ancestral rites exceptionally. Second, when a vihara in Anbongsa was constructed and Buddhist ceremony(法會) was held, Lee Mun-Gwon prayed for his ancestors, and he wrote a gimun(記文) in relation to Buddhist temple construction. Especially, he made a Chondojae(薦度齋) to be performed for his dead son in Anbongsa’s Dharma Hall(法堂). If the memorial ceremony could not be performed because of infectious diseases or funeral affairs, Lee had offerings of food on anniversary of the dead(忌日施食) to be held. From these historical facts, we can conclude that Anbongsa was the symbolic place showing the cultural and religious coexistence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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