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의료기구 개편의 성격과 그 의의
The Character and Meaning of the Reorganization of the Medical Institutions in the Early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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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우선 조선전기 의료기구 개편 과정과 그 성격을 살펴보았다. 조선전기에는 내의원(內醫院),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 제생원(濟生院) 등의 의료기구가 운영되었다. 이들 의료기구의 명칭부터 시작해서 의료기구의 연혁, 인원, 역할 등을 검토해보면, 조선에서는 유교적 민본주의를 표방하고 일원적인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료기구들의 변동 과정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후기의 사회구조와 지배이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고려의 토지제도를 살펴보면, 인민들의 자율성과 공공성이 확장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이념이었던 불교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아서 인민들의 강화된 위상을 공적인 국가제도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이에 모든 인민의 의료권이 보장되었다. 그런데 성리학의 민본주의가 인민을 최우선시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의료기구가 내의원 → 전의감 → 혜민서 → 활인서 → 심약의 순서로 편제된 이유는 성리학의 본말론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위계적인 구조는, 최상위 지배층인 왕실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의 신분계급구조와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대민의료기구인 혜민서와 활인서의 위상이 낮았던 것이다.
Abstract
In this article, I first explored the process and its characteristics of the reorganization of the medical institution in the early Chosun Dynast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medical institutions of Naeuiwon(內醫院), Jeonuigam(典醫監), Hyeminseo(惠民署), Hwalinseo(活人署), Jesaengwon(濟生院) were operated. From the examining the history, members, and roles of these institutions, it can be said that Chosun was aimed at Minbon Thought(For the people) of Confucianism and a one-sided centralized system.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change process of these medical institutions,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social structure and ruling ideology of the late Koryo period. In other words, the autonomy and publicness of the people expanded in the land system of Koryo, while on the other hand, it became important to overcome the inefficiency of Buddhism, which was a dominant ideology. The movement to reflect the strengthened status of the people into the public national system by taking the Neo-Confucianism as the dominant ideology has been strengthened, and the medical rights of all the people have been guaranteed. But it did not mean that the Minbon Thought(For the people) of Neo-Confucianism put the people first. The reason why the medical institution was organized in the order of Naeuiwon(內醫院) → Jeonuigam(典醫監) → Hyeminseo(惠民署) → Hwalinseo(活人署) was because the theory of essence and end(本末論) of Neo-Confucianism was projected. At the same time, this hierarchical structure was also coincided with the status-class structure of Chosun, which peaked at the royal family as the highest ruling class. For this reason, the status of the medical institutions for the people, Hyeminseo(惠民署) and Hwalinseo(活人署) was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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