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네마타운 연구
A Study on Seoul Cinema Town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서울시네마타운은 1958년 종로3가에 건축된 세기극장을 그 기원으로 한다. 세기극장은 1978년 곽정환이 이끄는 합동영화사가 인수하여 이름을 서울극장으로 바꾸었고 1989년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서울시네마타운으로 재탄생하였다. 서울시네마타운은 1990년 마땅한 상영공간을 획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UIP의 직배 영화들을 공격적으로 상영하면서 일약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영화관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 제작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반면 그간 수입이 제한되어 있던 할리우드영화들이 외화수입자유화 조치로 인해 물밀 듯 상영되면서 극장운영자들은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였다. 이 시기 서울시네마타운,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이 밀집한 종로3가는 UIP직배영화와 주요 한국영화가 서로 경쟁하는 장소로, 더 이상 영화제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충무로를 대신해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대체되었다. 서울시네마타운을 경영하던 합동영화사는 전국의 필름 유통망을 조직하여 영화배급과 상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감독 강우석이 만든 영화제작회사 시네마서비스가 서울시네마타운의 배급망을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90년대 한국영화산업의 가장 큰 영향력을 점하기도 했다. 서울시네마타운의 이러한 역할은 IMF사태 이후 영화계의 지각변동과 CJ, 롯데 등 대기업이 전국에 멀티플렉스영화관을 세워 자체 배급망을 만들어 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Abstract
The Seoul theater was built in Jongno 3-ga in 1959 and were reborn as a Seoul Cinema Town which was a multiplex movie theater in 1989. Seoul Cinema Town is the most popular movie theater with its aggressive screening of UIP’s directed films, which have been struggling because they can not get the right screening space at the time. The production of Korean films during this period was in a state of contraction. Meanwhile, Hollywood movies that had been restricted so far were screened out and award sales were expected to grow significantly. At that time, Seoul Cinema Town, Danseongsa and Piccadilly Theater were concentrated in Jongno 3-ga, which was a place where UIP’s directed films and major Korean films competed with each other. Naturally, this area has been replaced by a space that symbolizes Korean movies on behalf of Chungmuro, where no more movies are produced. Hap Dong Films which runs Seoul Cinema Town, organizes the film distribution network nationwide and plays the most important role in movie distribution and screening. In this situation, Seoul Cinema Town won the biggest influence of the Korean film industry in the 1990s, when cinema service made by the film director Kang Woo-suk made great success by utilizing the distribution network of Seoul Cinema Town. The role of Seoul Cinema Town continued until the late 1990s when large companies such as CJ and Lotte built multiplex cinemas nationwide to create their own distribution networks.
참고문헌 (28)
- 김동호, "한국영화정책사" (2005), 나남출판
- 朴鳳熙, "映畵. 演藝年鑑" (1969), 國際映畵社
- 오동진, "승부사 강우석" (2004), 랜던하우스중앙
- 정태수, "21세기 한국영화 IMF 이후 변화상을 중심으로" (2016), 국학자료원
- "告示波動과 外國映畵", 경향신문, ~ (1955)
- "곽정환씨는 누구인가", 한겨레신문, ~ (1996)
- "관객1위 「서울극장」 지난해 百萬5千명", 경향신문, ~ (1984)
- "舊세기극장 새단장 서울劇場으로 改名", 동아일보, ~ (1978)
- "되돌아본 90년 喜悲쌍곡선이 교차한 1年", 매일경제, ~ (1990)
- "매표電話 예약제실시 서울劇場서 처음으로", 경향신문, ~ (1982)
- "事故原因은 無許可施設", 경향신문, ~ (1960)
- "40年 뿌리박은 「妖花」 果敢히 일소", 매일경제, ~ (1968)
- "새會長에 郭貞煥씨 劇場聯 임원개선", 매일경제, ~ (1981)
- "서울의 깡패 생태", 동아일보, ~ (1958)
- "서울극장 再開館 증축공사 끝마쳐", 매일경제, ~ (1981)
- "세劇場네名拘束", 동아일보, ~ (1959)
- "世紀劇場無期停館", 경향신문, ~ (1960)
- "「世紀劇場」을 演劇兼用劇場으로", 동아일보, ~ (1977)
- "스타廣場 마련한 趙泰衡씨", 경향신문, ~ (1986)
- "「시네마타운」 UIP영화상영 결정", 경향신문, ~ (1990)
- "市民들이 怨聲 世紀劇場 再開館에", 경향신문, ~ (1960)
- "영화가 「深夜극장」첫선 「애마부인」 子正관객 “滿員”", 동아일보, ~ (1982)
- "五⋅二總選擧當選者面貌", 동아일보, ~ (1958)
- "總會서 役員改選 映畵配給協會", 동아일보, ~ (1956)
- "충무로 옛영화 “레디고”", 매일경제, ~ (1989)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URL]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URL]
- "인천대표극장 멀티플렉스 애관극장"[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