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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介淸의 학풍과 節義의 함의

鄭介淸的學風和節義之含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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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유교학

초록

이 글은 조선조 중기의 유학자 정개청(1529-90, 困齋)의 학풍과 節義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쓴 것이다. 정개청의 학풍은 朴淳을 만나 학문적인 조언을 듣고 자각의 체험을 거치기 전까지는 博學的 학문태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각의 체험을 거친 이후로는 정주학 텍스트를 숙독하면서 거경궁리를 자신의 학문종지로 받아들였으며, 사색하여 자득한 결과를 『愚得錄』으로 남겼다. 현전하는 『우득록』으로만 볼 때, 그의 학문적 탐색은 정주학의 논리와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정주학과 차별화되는 어떤 독특한 논리나 학설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학문체계가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주학의 종지를 철저한 사색과 자득으로 이해하여 이를 당시 사회에 실천적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정개청은 정주학적 구도 속에서 자연세계의 원리와 이념이 인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길을 모색했던 유학자이다. 그러나 기질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인간에게 내재된 도덕원리를 발현시킬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敬공부를 기초로 삼아 氣質의 제한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 실현해야할 가치의식은 義라고 주장하고, 義와 利, 公과 私, 天理와 人欲의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義=公=天理가 소통되는 열린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나아가 의리와 원칙이 문란해져 가는 세태를 목격하고 좀 더 엄정한 節義의 실천을 시대정신으로 요구했다가 도리어 절의로 목숨을 잃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Abstract

這一篇文章是爲了說明關于朝鮮中期儒學者鄭介淸(1529-1590, 困齋)的學風和節義之含義寫的.筆者認爲, 遇到朴淳的學問的助言而得到自覺的體驗以前, 鄭介淸的學風是堅持博學的學問態度的. 但是自覺的體驗以後, 他通過對程朱學的文獻熟讀, 接受了以居敬窮理爲自身的學問宗旨, 結果留下了有關于以思索爲主而得到的自覺的觀點之許多的文獻資料. 若果我們看現存的『愚得錄』, 可以知道他的學問的探索沒有脫離程朱學的論理和範疇. 因此, 可以說他的觀點和程朱學之間沒有獨特的論理和學說上的差別. 雖然如此, 但是我們不能說, 他的學問沒有什麽意義. 因爲他通過對程朱學的宗旨的探索和自得, 試圖了對對當時社會實踐的努力. 鄭介淸是一位以程朱學的構造爲主的儒學者, 所以他走上了以程朱學的構造所表現的原理和理念如何適用于社會的路線. 但是, 若果沒有改變氣質, 我們就無法發顯道德的原理之路線. 因此 他以‘敬工夫’爲基礎, 爲了克復氣質之界限不斷地努力. 而且, 他認爲, 不僅是超越時空的, 而且是人們要做到的價値意識, 就是‘義’. 就這樣, 他明確地區分了義和利, 公和私, 天理和人欲, 而提出了以‘義=公=天理’這樣的開放社會. 但是, 他對當時混亂義理和原則的社會, 以嚴格的節義之實踐表現了時代精神, 而他的實踐遇到了失去他的性命這樣的逆說.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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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松齋遺稿(羅世纘) in 韓國文集叢刊" (1989), 민족문화추진위원회
  7. "愚得錄(鄭介淸) in 韓國文集叢刊" (1990), 민족문화추진위원회
  8. 김낙진, "의리의 윤리와 한국의 유교문화" (2004), 집문당
  9. 황광욱, "화담 서경덕의 철학사상" (2003), 심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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