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冠의 양식변화와 자립화 시기 신라정치- 황남대총남분 출토 신라관들을 중심으로 -
The Changing Styles of Silla Crowns and Silla Politics during the Self-Relianc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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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직각수지형 입식에 2개의 녹각형 입식을 갖춘 신라금관의 정형이 완성되기까지 신라관은 몇 단계의 변화과정을 거쳤다. 초기 신라관은 정형화된 양식을 띠지 않고 출발했으나 고구려 양식이 사용된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황남대총남분에서 같은 형식의 금동관, 즉 4개의 수지형 입식을 갖춘 관들이 다수 출토되어, 황남대총남분 시기에 신라관이 점차 정형화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신라관의 정형인 신라금관이 나타나기 이전의 신라관과 당시의 신라정치의 변화상에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新羅冠의 정형화 과정에 있어 첫 번째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황남대총남분 단계에 어떠한 내·외적인 추동원인이 신라관의 변화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에 필자는 당시 신라사회와 정치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추동원인으로 고구려와의 관계 변화 및 김씨왕권의 강화에 주목하고, 신라관과 신라정치의 일면을 함께 고찰해 보았다. 황남대총남분의 금공예품을 기준으로 한 연대 추정 및 여러 정황들을 고려할 때 피장자가 눌지마립간임을 상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눌지마립간 대의 신라정치, 즉 자립화 정책과 김씨왕권 강화정책이 황남대총남분 신라관들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 황남대총남분 출토 신라관들 중 가장 이른 형태의 관인 깃털형 은·금동관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눌지마립간 재위 초기 고구려의 강력한 입김 아래 놓여 있던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지방에서 출토된 초기 신라관들 역시 고구려의 강력한 영향을 보여 준다. 이후 수지형 입식의 관들이 나타나고 입식의 들림각이나 내각이 점차 둔각에서 직각에 가까워 질 뿐 아니라 입식의 폭도 넓어진다. 이러한 양상들은 지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구려로부터 자립화를 추진했던 눌지마립간의 노력 및 의지가 신라식 금동관의 창안으로 나타났음을 말해 준다. 또한 신라식 금동관을 지방 수장층들에게 위세품으로 하사하여 지방을 통제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정치적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직각 수지형 입식 신라관의 출현을 눌지마립간의 역대원릉 수즙기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때, 김씨족단을 통합하고 김씨 왕권의 신성함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3개의 수지형 입식 신라관이 김씨 시조신화를 형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남대총 남분 출토의 금동관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원시적인 형태의 녹각형이 가미된 관이다. 파편의 형태로만 남아 있어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못하나 이후 북분 단계에 나타나는 신라금관, 즉 ‘3개의 수지형 입식 + 2개의 녹각형 양식’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관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특이한 파편이 녹각만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본 연구를 통해 마립간 초기 신라관들의 변화 양상에 고구려와의 관계 변화 및 김씨 왕권 확립의 강력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후 신라금관의 성립과 그 정치적인 기능에 대해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Silla crowns underwent a changing process in a couple of stage until the standard form of its golden crowns with three right-angled branch types and two antler types. The early crowns of Silla made a start with no standardized style and used the Goguryeo style common to them. Many gilt-bronze crowns in the branch type that had the same form as the early crowns were excavated at the Hwangnam Daechongnam Tombs, which indicates that Silla crowns had become increasingly standardized. This study focused on changes to Silla crowns and politics before their standard, golden crowns. The study thus began by asking a question about the internal and external driving force behind changes to Silla crowns at the stage of the Hwangnam Daechongnam Tombs, which were the first important junction in the standardization process of its crowns. The investigator focused on changes to Silla's relations with Goguryeo and the reinforcement of the Kim family's royal power as the biggest driving force that affected the society and politics of Silla those days and examined Silla crowns and politics. The individual buried in the Hwangnam Daechongnam Tombs was assumed to be Nulji Maripgan according to the estimation of years based on the gold craftwork excavated at the tombs and the excavation patterns of Silla crowns. In turn, the study examined the effects of Silla politics during the era of Nulji Maripgan, which was characterized by the self-reliance policy and the reinforcement of the Kim family's royal power, on changes to Silla crowns at the tombs. Of Silla crowns excavated at the tombs, the feather-type ones, which were the earliest form of them, were under the influence of Goguryeo and reflect the political situation under the powerful influence of Goguryeo in the early days of Nulji Maripgan. Early Silla crowns excavated locally also show the strong influence of Goguryeo. Later, the Goguryeo style disappeared with the appearance of the branch-type crowns that could be called the Silla style, which is supported by the local excavation patterns. These findings indicate that Nulji Maripgan's efforts and determination to pursue self-reliance from Goguryeo led to the creation of golden crowns in the Silla style. They also reflect his political efforts to control local areas and make them his supportive base by giving golden crowns in the Silla style to local heads as prestige goods. When the appearance of right-angled branch-type crowns of Silla is understood in the same context as the Sujeupgisa of Nulji Maripgan's tomb, they can be seen as part of his efforts to integrate the groups of the Kim clan and establish the sacredness of the Kim family's royal power. It is thus likely that the myth of the Kim family as the founder was embodied in the icons of three branch-type crowns of Silla. Finally, the crowns in a primitive form with the addition of an antler element can be estimated to be in the transitional period right before the golden crowns at the Hwangnam Daechongnam Tombs, but there is a question about whether this particular fragment means only an antler. The present study shows that the changing patterns of Silla crowns in the early days of Maripgans reflect fully the changing relations of Silla with Goguryeo and the Kim family's strong determination to establish its royal power and offers some inspirations about the following creation of Silla golden crowns and their political fu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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