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대총 북분 주인공 성격 재고
Reconsideration for the North Mound of Hwangnamdeachong Tomb’s Buried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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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위용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에 대한 연구자 간의 분석방법과 역연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그 동안 고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특히, 보고서에서 북분 주인공의 생물학적 성을 ‘女性’으로 결정한 근거인 ① 「夫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제과대 ② 피장자가 大刀를 착장하지 않은 것 ③ 피장자가 착용한 금제과대의 대형요패가 남분과 달리 오른쪽에 위치한 것 ④ 남분보다 太鐶式의 관수하식이 많은 것 ⑤ 부장품으로 紡錘車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들 고고자료에 대한 개별적인 분석과 검토를 통해 볼 때, 북분을 여성으로 보기에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이에, 황남대총 북분 주인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견지하고 기존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피장자상을 설정하여, 고총고분이 표형분의 형태로 축조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거대한 봉분을 갖춘 두 개의 고총고분이 연접한 형태로 웅장한 규모의 표형분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라의 사회․정치적인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므로, 황남대총은 마립간시기에 3대에 걸쳐 직계존속으로 권력이 계승된 가계에 의해서만 순조로이 축조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신라의 역사 속에서 이에 부합되는 주인공으로는 눌지마립간 - 자비마립간 - 소지마립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위계승의 부자상속으로 실질적인 권력의 승계가 3대에 이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과 표형분 형태의 고총고분으로 축조된 황남대총을 서로 관련지어 본다면 남분은 자비마립간에 의해서 조성된 ‘눌지마립간릉’이고, 북분은 소지마립간에 의해 축조된 ‘자비마립간릉’으로 볼 수 있다. 5세기 후반 당시 표형분의 고총고분으로 처음 축조된 황남대총은 당시 신라인들에게 급변하는 국제관계와 중앙집권적 왕권사회의 성장된 모습을 상징적인 의미로 보여준 것이다. 『三國史記』등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들에 근거하여 볼 때, 황남대총의 축조는 당시 미추이사금 이후 女婿로서 왕위가 계승되다가, 눌지마립간 이후 왕위를 직계적자 계승으로 확립시키고, 고구려의 정치, 군사적 영향으로 부터 실질적인 자주권을 회복하며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고 있던 자비와 소지마립간 시기의 정치․사회적인 자신감과 역사상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기념물로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Abstract
The north mound of Hwangnamdaechong tomb is the biggest ancient tomb in south part of Korea, but it has some weakness for interpreting social meaning of construction background caused by difference from date or analysis methodology of artifacts among the researchers. It could not be decisive evidences that some context give a information about buried person as female, for example, ① 「夫人帶」silver belt pendant, ② absence of long sword, ③ position of gold belt pendant, ④ thick adornment of headdress, ⑤ spindle whorl. Construction of huge articulated tomb was connected to socio-political situation of Silla during the tree generation from Nulji maripgan to Soji maripgan such as the hereditary succession of power to lineal ascendant. It means that the south mound is Nulji maripgan’s tomb constructed by Jabi maripgan and the north mound is Jabi maripgan’s by Soji maripgan. Most of all, socio-political ability of Silla as ancient state could make tumulus like Hwangnamdaechong tomb the 5thcentury A.D. based on regaining autonomy from Goguryeo and growth of centralized societ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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