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氷炭錄』의 知行論 - 『전습록』과 비교를 중심으로 -
The Theory of knowledge and action in ‘Bing Tan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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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항재 사상에 대해 원교 이광사는 양명학과 주자학 사이를 방황하다가 결국 주자학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원교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항재의 사상을 朱王 절충론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정인보, 유명종, 심경호, 서경숙 등이 있다. 반면 정인재는 기존의 학자들과는 달리 항재의 사상을 주학과 왕학의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하곡의 실심실학을 충실히 계승한 심학자라고 주장했다. 이상과 같이 항재 사상에 대한 대부분 연구자들의 평가는 왕주절충론이다. 항재는 「빙탄록」에서 ‘知行合一’론을 바탕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의 知行論을 논했다. 「빙탄록」에 나타난 良知와 知行合一 그리고 致良知에 대한 항재의 주장은 양명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항재에 의하면, 陽明은 知行合一을 주장했다. 이때 知는 良知로서 외부 사물에서 구하는 지식의 知가 아니다. 그러므로 知의 본체는 저절로 行과 合一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욕의 방해로 인해 致良知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知와 行은 合一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知와 行은 본래 하나다. 만약 견문을 통해 얻은 사물에 관한 知라고 한다면 行과 合一되지 않는다. 致良知는 곧 知行合一이다. 知를 良知로 생각하면 知行合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知行合一과 致良知說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 꾸러미다. 세상 사람들은 致知가 良知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知와 行을 둘로 본다. 致知는 良知이므로 知와 行은 하나다. 항재는 바로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주자학의 格物致知說을 이해하고자 했다. 「빙탄록」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체계 없이 서술해 내려간 항재 임종 1년 전의 글이다.
Abstract
據圓嶠李匡師, 恒齋曾徘徊在陽明學與朱子學之間,終究歸向于朱子學. 圓嶠以後寂大部分學者, 將恒齋思想視爲朱子學與陽明學之間的折衷, 以鄭寅普, 劉明鍾, 沈慶昊爲代表. 而鄭仁在不同于已往的學者們, 主張恒齋思想是忠實繼承霞谷實心實學的心學者, 竝不認爲是朱子學與陽明學之間半通不通的折衷, 如上所述硏究者們對恒齋思想的評價大多歸結于王朱折衷論. 恒齋在≪氷炭錄≫中基于知行合一論論述朱子學與陽明學的知識論. 展現于≪氷炭錄≫的良知和知行合一, 及恒齋對良知的主張都以陽明學. 據恒齋陽明主張知行合一. 此時的‘知’指良知, 竝不是求于外婦事物的知識. 因此‘知’的本體自行與‘行’合一. 但一個人有時由于私慾, 不可能致良知. 所以‘知’和‘行’就不會合一. 然而‘知’與‘行’本是一個. 如果一個‘知’是經過見聞而所獲得的, ‘知’與‘行’就不歸合一. 致良知就是知行合一. 若將‘知’視爲良知, 便可以說是知行合一的. 知行合一與致良知說竝不是各別的, 而是一個串兒. 人們不知道致良知就是良知的. 所以將‘知’與‘行’視爲二. 致良知是良知, 因此‘知’與‘行’歸于一. 恒齋力求基于陽明學理會格物致知說. ≪氷炭錄≫正是以如此內容爲中心著述的, 寫于臨死一年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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