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첨성대 축조 발원자

Who Proposed to Build Cheomseongdae?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첨성대 축조발원자로 신종원(1996)은 안홍(579~640), 장윤성‧장활식(2009)은 밀본을 지목했으며, 장활식(2016)은 안함(=안홍)의 별호가 ‘밀본’이었다고 했다. 첨성대연구는 신라밀교의 근본이었던 안함(=안홍)을 첨성대 축조발원자로 지목하였다. 안함(=안홍)은 진평왕 23년(601)부터 隋에서 비법과 진문을 학습하고, 진평왕 27년(605)에 귀국하면서 불사리, 『능가경』, 『승만경』뿐만 아니라 『금광명경』, 『관정경』 등의 밀교경전도 신라로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진평왕47년(625)에는 唐에서 서역삼장들을 초빙해 『전단향화성광묘녀경』 역경사업을 펼쳐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을 뒷받침했다. 안함(=안홍)은 『안함기』, 『안홍기』, 『동도성립기』 등으로 칭해진 참서를 통해 신라역사를 재구성하고, 신라에 밀교를 전파하고, 미래신라를 설계하여 후대에 의해 聖人으로 평가된 김씨 진골태생의 밀교승려이었다. 본 연구는 첨성대축조 발원자가 안함(=안홍)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첫째, 선덕왕지기삼사의 제 3사 전체 내용이 안함(=안홍)의 예언에 기초한 일연의 서술로 판단되었다. 선덕여왕의 죽을 날은 부험의 영험함이 입증되는 형태로 안함(=안홍)에 의해 예언되었다고 본다. 둘째, 첨성대가 안함(=안홍)의 신라불국토설에 입각한 것임을 입증하는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발견했다. 『별기』는 안함(=안홍)의 참서인 『동도성립기』로 드러났다. 셋째, 안함(=안홍)관련기록에 ‘일연의 코드’가 존재함을 밝혔다. 황룡사의 초주였던 환희사도 역시 안함(=안홍)의 별호였다고 판단되었다. 넷째, 선덕여왕의 장례는 안함(=안홍)이 隋에서 가져왔을 『관정경』 제 6권의 탑총장으로 치러졌던 것이다.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묘탑이자 영혼의 도리천 상생통로였다.

Abstract

Who Proposed to Build Cheomseongdae? Cheomseongdae(瞻星臺), known as one of the world's oldest star-gazing tower built during the reign(632~647) of Queen Seondeok(善德女王), is a stone structure located in the former Silla(新羅) Dynasty capital of Gyeongju(慶州). A research suggested that an Esoteric Buddhist monk called AhnHong(安弘) proposed to build the structure. Another research articulated that it was MilBorn(密本) who proposed to build the stupa. A more recent research revealed that MilBorn, of which literal meaning is 'the Root of Secret Buddhism', was an alias for AhnHong. AhnHong, also known as AhnHaam, went to Sue(隋) in 601 at the age of 23 to study Esoteric Buddhism and returned to Silla in 605 with various sutras that greatly impacted Buddhism in Silla. In 625, he returned this time from Tang(唐) with three Indian Tripiṭaka Masters(三藏法師) who translated an Esoteric sutra titled 『A Mysterious Woman of Sandalwood Incense and Burning Star Lights』(『栴檀香火星光妙女經』) at HwangYoung Temple(黃龍寺). This sutra was for deifying Princess DeokMaan(德曼公主) who became Queen Seondeok as an incarnated Mahāśrī(摩訶室利). Mahāśrī is a Buddhist goddess of happiness and good fortune adopted from a Hindu goddess, Lakṣmī(拉希米). AhnHong desired to construct a Buddha Land in Silla but died in 640. His plan, however, was successfully carried out by Silla people after his death. His Buddha Land Plan included the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Yong Temple(皇龍寺九層木塔) built in 645, Queen SeonDeok's funeral at Trayastriṃśa(忉利天) carried out in 647, and the Four Deva Temple(四天王寺) below Trayastriṃśa built in 679, and the seven major Buddhist temples in Gyeongju constructed during the 6th and 7th centuries. This paper examined the plausibility of the claim that Cheomseongdae was proposed to be built by AhnHong, reached at a conclusion that the claim is valid, and came up with additional evidence to support the claim. It turned out that AhnHong was responsible for many prophecies that Silla people truly believed. In his prophetic book, of which one name is 『Chronicles of Eastern Buddhism's Formation』(『東都成立記』), AhnHaam rewrote the history of Silla from the time before Śākyamuni and foretold, based on the rewritten history, the events that would be eventually actualized by the Silla people. 『Left-out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三國遺事』), a 13th century historical text containing the oldest record on Cheomseongdae, simply stated that "According to 『Supplementary Records』(『別記』), Cheosengdae was built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 Consequently, many researchers had wondered what were written in the records. This paper found evidence from the quoting book that 『Supplementary Records』 were from the prophetic book, 『Chronicles of Eastern Buddhism's Formation』, written by AhnHong. One known fact in Cheomseongdae research is that the tomb of Queen Seondeok and Cheomseongdae were aligned with the direction of sunrise at the winter solstice. This research found that the locations were determined in such a fashion based on an esoteric sutra called 『Sutra of Consecration』(『灌頂經』) imported very likely by AhnHong. This paper concludes that AhnHong was the esoteric monk who proposed to build Cheomseongdae.

참고문헌 (131)

  1. "三國史記", ~
  2. "三國史節要", ~
  3. "世祖實錄", ~
  4. "成宗實錄", ~
  5. "燕山君日記", ~
  6. "東史綱目", ~
  7. "東國史略(朴祥)", ~
  8. "海東高僧傳", ~
  9. "三國遺事", ~
  10. "新羅文武大王陵碑", ~
  11. "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 ~
  12. "高仙寺誓幢和上碑", ~
  13. "廣開土王陵碑", ~
  14. "貞孝公主墓誌", ~
  15. "孤雲集", ~
  16. "桂苑筆耕", ~
  17. "四佳集", ~
  18. "佔畢齋詩集", ~
  19. "石洲集", ~
  20. "谿谷集", ~
  21. "槎上錄", ~
  22. "東溟集", ~
  23. "秋齋集", ~
  24. "臺山集", ~
  25. "周書", ~
  26. "隋書", ~
  27. "舊唐書", ~
  28. "資治通鑑", ~
  29. "續高僧傳", ~
  30. "集古今佛道論衡", ~
  31. "歷代三寶紀", ~
  32. "禮舍利塔儀式", ~
  33. "沙彌律儀要略增註", ~
  34. "高僧法顯傳", ~
  35. "大唐西域記", ~
  36. "大慈恩寺三藏法師傳", ~
  37. "全唐詩", ~
  38. "藝文類聚", ~
  39. "古今注", ~
  40. "游城南記", ~
  41. "佛說灌頂經", ~
  42. "金光明經", ~
  43. "合部金光明經", ~
  44. "金光明最勝王經", ~
  45. "妙法蓮華經", ~
  46. "佛說觀佛三昧海經", ~
  47. "長阿含經", ~
  48. "起世經", ~
  49. "大吉祥天女十二契一百八名無垢大乘經", ~
  50. "佛說華手經", ~
  51. "正法念處經", ~
  52. "大方廣佛華嚴經", ~
  53. "摩訶摩耶經", ~
  54. "撰集百緣經", ~
  55. "七佛所說神呪經", ~
  56. "過去現在因果經", ~
  57.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
  58. "廣弘明集", ~
  59. "法苑珠林", ~
  60. "佛祖統紀", ~
  61. "釋氏通鑑", ~
  62. "歷朝釋氏資鑑", ~
  63. "居士傳", ~
  64.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
  65.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
  66. "金光明懺法補助儀", ~
  67. "大方廣佛華嚴經感應略記", ~
  68.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
  69. "大方等大集經菩薩念佛三昧分", ~
  70. "妙法蓮華經玄義釋籤", ~
  71. "辟支佛因緣論", ~
  72. "往生西方淨土瑞應傳", ~
  73. "諸家曆象集", ~
  74. "華嚴經行願品疏鈔", ~
  75. 고익진, "한국밀교사상연구" (1986), 불교문화연구소
  76. 고익진, "한국고대불교사상사" (1989), 동국대학교
  77. 김복순, "신라화엄종연구" (1990), 민족사
  78. 강은해, "豆豆里(木郞)再考", 한국학논집, 16 (1989), 계명대
  79. 강재철, "선덕여왕지기삼사조 설화의 연구", 동양학, 21 (1991)
  80. 곽승훈, "신라시대 지리산권의 불사활동과 신행선사비의 건립 -중대 말 하대 초의 정치변동과 관련하여-", 신라문화, 34(34), pp.193~218 (2009), 신라문화연구소
  81. 곽승훈, "『해동고승전』 안함전 연구", 한국고대사탐구, (17), pp.117~145 (2014), 한국고대사탐구학회
  82. 김두진, "삼국유사의 인용문과 그 성격", 사학연구, (76), pp.85~122 (2004), 한국사학회
  83. 김복순, "자장의 생애와 율사로서의 위상", 대각사상, (10), pp.9~40 (2007), 대각사상연구원
  84. 김복순, "삼국유사 명랑신인조의 구성과 신인종 성립의 문제", 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 32 (2011)
  85. 김복순, "6세기 '삼국사기' 불교관련 기사 存疑 6세기 '삼국사기' 불교관련 기사 存疑", 신라문화, (39), pp.63~88 (2012), 신라문화연구소
  86. 김상현, "사천왕사의 창건과 의의",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17 (1996)
  87. 김선주, "선덕여왕의 즉위 배경과 통치적 특징", 페미니즘연구, 9(2), pp.313~332 (2009), 한국여성연구소
  88. 김연민, "密本의 『藥師經』 신앙과 그 의미", 한국고대사연구, (65), pp.203~239 (2012), 한국고대사학회
  89. 김일권, "첨성대의 靈臺적 독법과 신라 왕경의 三雍제도 관점", 신라사학보, (18), pp.5~31 (2010), 신라사학회
  90. 김재경, "신라의 밀교 수용과 그 성격", 대구사학, 14 (1978)
  91. 나희라, "고대의 상장례와 생사관", 역사와 현실, (54), pp.171~195 (2004), 한국역사연구회
  92. 문명대, "신라 신인종 연구", 진단학보, 41 (1976)
  93. 민영규, "신라 불교의 정립과 삼계교", 동방학지, 77 (1993)
  94. 박미선, "新羅 占察法會와 密敎", 동방학지, (155), pp.1~30 (2011), 국학연구원
  95. 박선경, "한국인의 죽음관",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5 (1999)
  96. 박태화, "한국불교의 밀교경전 전래攷", 한국불교학, 1 (1975)
  97. 변동명, "충숙왕의 밀교대장 금자사경", 역사학보, (184), pp.41~77 (2004), 역사학회
  98. 소현숙, "隋의 國家大寺 大興善寺 -寺刹의 內外的 環境과 空間의 復原的 考察", 중국사연구, (88), pp.45~78 (2014), 중국사학회
  99. 신용철, "初期 新羅 佛塔觀에 대한 考察", 문화사학, (27), pp.447~465 (2007), 한국문화사학회
  100. 신종원, "안홍과 신라불국토설", 중국철학, 3 (1992)
  101. 신종원,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조의 몇 가지 문제", 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 17 (1996)
  102. 염중섭, "〈善德王知幾三事〉중 第3事 고찰", 사학연구, (91), pp.49~92 (2008), 한국사학회
  103. 옥나영, "관정경과 7세기 신라 밀교", 역사와 현실, (63), pp.249~277 (2007), 한국역사연구회
  104. 운월스님, "능가경의 선(禪)사상 Ⅱ", 禪學(선학), (16), pp.9~58 (2007), 한국선학회
  105. 유복모, "경주 첨성대의 위치해석에 대한 고찰", 한국과학사학회지, 3(1) (1981)
  106. 이강래, "삼국유사 인용 古記의 성격", 서지학보, 7 (1992)
  107. 이근직, "신라의 상장례와 능원제도",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28 (2007)
  108. 이기동, "선덕여왕의 시대: 첨성대 논쟁에 덧붙여서", 한국과학사학회지, 3(1) (1981)
  109. 이기백,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진단학보, 36 (1973)
  110. 이동근, "삼국유사의 한문학사적 위상", 우리말글, 20 (2000)
  111. 이문규, "첨성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첨성대 해석의 역사와 신라시대의 천문관", 한국과학사학회지, 26(1), pp.3~28 (2004), 한국과학사학회
  112. 이세호, "新羅 中代 王權과 密敎", 동국사학, (49), pp.265~292 (2010), 동국역사문화연구소
  113. 이인철, "분황사 창건의 사회·경제적 기반", 신라문화, 20 (1999)
  114. 장윤성, "첨성대 회위정(囬囲井) 가설", 한국고대사연구, (54), pp.463~502 (2009), 한국고대사학회
  115. 장지훈, "자장과 분황사", 신라문화, 20 (1999)
  116. 장지훈, "신라 불교의 밀교적 성격", 선사와 고대, 16 (2001)
  117. 장활식, "첨성대 옛 기록의 분석", 신라문화, (39), pp.117~158 (2012), 신라문화연구소
  118. 장활식, "경주첨성대의 파손과 잘못된 복구", 문화재, 45(2), pp.72~99 (2012), 국립문화재연구소
  119. 장활식, "경주 첨성대의 방향과 상징성", 신라문화, 42, pp.111~154 (2013), 신라문화연구소
  120. 「釋안함」전의 분석, "신라문화", 2015, 243~278, pp.신라문화연구소
  121. 장활식,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밀본의 실체", 신라문화, 47, pp.103~138 (2016), 신라문화연구소
  122. 정병삼, "삼국유사 신주편과 감통편의 이해", 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 32 (2011)
  123. 정병조, "불교의 우주관", 과학사상, 10 (1994)
  124. 조경철, "신라의 여왕과 여성성불론", 역사와 현실, (71), pp.127~152 (2009), 한국역사연구회
  125. 조원영, "신라 중고기 불교의 밀교적 성격과 약사경", 역사와 세계, 23 (1999)
  126. 조원영, "신라 중대 신인종의 성립과 그 미술", 역사와 경계, 40·41 (2001)
  127. 주보돈, "한국 고대사회 속 여성의 지위", 계명사학, 21 (2010)
  128. 채미하, "한국 고대의 죽음과 喪・祭禮", 한국고대사연구, (65), pp.35~75 (2012), 한국고대사학회
  129. 채상식, "신라사에 있어서 황룡사의 위상과 그 추이",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22 (2001)
  130. 하도겸, "『三國遺事』 塔象 皇龍寺丈六條의 초주 환희사와 원효", 韓國史學史學報, (31), pp.97~123 (2015), 한국사학사학회
  131. Das, D, "Place of Goddess Bimala in the Shakti Cult of Hindu Mythology", Orissa Review (2005)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7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