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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일본군 소속 조선인 군인의 歸路

The Homeward Journey of Joseon Soldiers in the Japanese Army after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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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글은 일본군 출신의 조선인 군인이 겪은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과 귀환과정을 연합국의 점령지역별로 고찰한 논문이다. 조선인 군인의 포로생활과 현지로부터의 출발 과정은 연합군의 점령과정 및 시점, 현지인의 사정, 그리고 전후 정책과 맞물려 매우 다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국가별 출발 항구는 한두 곳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귀국도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 이루어졌다. 출입국의 통제는 연합국의 수송능력과 치안 및 위생정책 때문이었다. 조선인 군인은 미군과 영국군이 항복을 접수한 지역의 경우 수용소에서 자치조직을 구성하고 마치 해방자처럼 자유롭게 지냈다. 반면에 많은 경우 중국 본토지역에서는 중국국민당 군대가 항복을 접수할 때까지 일본군의 통제하에 있었다. 소련군의 포로가 1만여 명의 조선인 군인은 강제노동에 종사하다 풀려났다. 조선인 군인의 수용소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치조직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태극기와 애국가를 통해 느끼고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달리 보면,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황민화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기재를 받아들이는 정서가 조선인의 내면에 묵묵히 흐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두 가지 表象기재는 조선인이 황민화의 잔재를 부정하고 내면에서 몰아내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prison camp life experienced by Joseon soldiers who served in the Japanese army and their repatriation journey in different parts of the allied powers' occupied territories. The Joseon soldiers' life as prisoners and the process of starting their journey back home were dependent on the allied forces'occupation process and time, the circumstances of the natives, and postwar policies, and thus the soldiers'experiences varied greatly. Even so, the port of departure for their journey home in each country was limited to one or two places, and they arrived home mostly through the Busan Harbor. The port of entry was controlled according to the allied forces'transportation capacity and their policy of maintaining public order and sanitation. Joseon soldiers who had surrendered to the American and British forces managed to form their own autonomous groups in prison camps and lived as if they had been liberated. In contrast, many of thosesoldiers in mainland China were under the rule of the Japanese armyuntil the Chinese army received their surrender. About 10,000 of them were also held prisoner by the Soviet army, and they worked in forced labor before being released. Joseon soldiers' prison camp life was essentially managed by self-organized groups, and this process was also an opportunity for them to feel and confirm their national identity through the use of the Korean flag and the national anthem. Looked at another way, this signified that within those soldiers was a silent but steady sentiment that would readily receive representations that could reveal emperor worship as a fabrication at the time of Japan's defeat. The two symbolic representations had played the role of a catalyst for the Joseon soldiers in disavowing the vestige of emperor worship and driving it out from with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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