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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악단에 관한 일고찰 -일본 연주회 기록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Members of theChosŏnjŏngakdan and the Background of Their Activities -Focusing on the Articles on Their Concert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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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음악학

초록

근대 조선에서 영산회상을 녹음해 유성기 음반을 남긴 단체 중 조선정악단이 있다. 본고에서는 일본 측의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정악단과의 일본 방문 일정, 연주회의 악곡 구성 등에 관해 밝혔으며, 조선정악단의 구성원과 활동 배경을 당시 조선 음악계의 상황과 관련지어 논의했다. 1930년 4월 일본을 방문한 조선정악단은 우선 오사카에서 음반 취입을 위한 녹음을 하였으며, 이후 도쿄에서 5월 하순 이후 6월 초에 이르기까지 네 번의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도쿄의 연주회는 조죠지(増上寺)와 고교쿠라부(工業倶楽部)의 시연회, 그리고 도쿄아사히신문사 강당, 와세다대학교 강당에서의 연주회 순의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정악단의 연주 악곡은 영산회상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는 불교 음악에 기원을 두고 이천년간 전해져 내려온 “조선의 정악”이라고 일본에 소개되었다. 조선정악단이라는 명칭은 일본 활동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조선에서 온 “정악”을 연주하는 이들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도록 “조선정악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이미 “아악”은 조선의 궁중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조선의 전통음악은 “고악”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이에 영산회상을 조선정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소개하면서 궁중의 아악과 구분되는, 민간에서 전래되는 오랜 전통을 지닌 기악 곡인 영산회상이 속하는 조선 음악의 장르에 대하여 “정악”이라고 이름 붙여 소개한 것이다. 조선정악단의 구성원은 윤기선(尹琦善), 이승환(李承煥), 이명호(李明鎬), 윤종선(尹從善), 김명수(金明洙), 지용구(池龍九), 방성조(方聖朝), 이완(李浣) 등이었다. 이러한 조선정악단의 연주자 구성은 당시 1930년대 전후 영산회상 연주를 담당했던 이들 중 인천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던 이들, 그리고 경성여자미술학교 주최의 조선정악대회에 출연하였던 이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경성여자미술학교는 학교 운영비 마련을 위해 영산회상 등의 기악곡과 당대 유행하던 성악곡을 함께 무대에 선보이는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조선정악대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조선정악대회의 흥행은 영산회상이 새로운 레퍼토리로서 음반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조선정악대회에 출연했던 기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레코드 취입을 목적으로 하여 일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주로 조선에서 “음률” 또는 “영산회상”이라고 불리던 음악이 일본에서는 “조선의 정악”이라 이름 붙여져 연주되었던 것이다.

Abstract

Chosŏn chŏngaktan 朝鮮正樂團(Performing Group of Korean Classical Music)was the major ensemble who is recorded Yŏngsan hoesang 靈山會相on modern sp records label. Despite the significance of their music in sp records, the specific activity and the information about the ensemble member was not as well known. This is mainly caused by the lack of information about this ensemble group in Korea. But, the trace of this ensemble group was able to be found in japanese articles in magazine and newspaper of 1930's. As a result of the study, some characteristics of the Chosŏn chŏngaktan was revealed. The name of the ensemble Chosŏn chŏngaktan was firstly used for their concerts and recording activity in Japan. They used the term chŏngak 正樂on purpose to emphasize their musical identity. Because Japan in 1930's, the term aak 雅樂and koak 古樂had different meaning from their main program Yŏngsan hoesang. They wanted to introduce new Korean traditional ensemble program Yŏngsan hoesang by calling that chŏngak. Their concert in Japan was held from may 1930, until June 1930. From their preview concert at Chojyoji 増上寺and Gogyo kurabu kaikan 工業倶楽部, they kept on going concert tour in Tokyo asahi shinbunsha 東京朝日新聞社and Waseda 早稻田University. On their concert, they added kayagŭm sanjo 伽倻琴散調,pyŏngch'ang 倂唱and sijo 時調on the program besides Yŏngsan hoesang to help Japanese audience. Based on the result of the research, there were 8 members on ensemble. The members were Yun Ki-sŏn 尹琦善, Yi Sŭng-hwan 李承煥, Yi Myŏng-ho 李明鎬, Yun Chong-sŏn 尹從善, Kim Myŏng-su, 金明洙Chi Yong-gu 池龍九, Pang Sŏng-jo 方聖朝and Yi Wan 李浣. They were all member of the Chosŏn chŏngaktan and they were mainly performed in Inch'ŏn 仁川area. Chosŏn chŏngak taehoe 朝鮮正樂大會was firstly organized for the Kyŏngsŏng 京城womans art school's fund raising. On that concert, Yŏngsan hoesang was played as a main program for the first time at concert. The success of that concert made it possible for Yŏngsan hoesang to become a major program at concert as a new wave. In the wake of this event, the musicians of Chosŏn chŏngak taehoe visited Japan for their recording and concert. Since then, the title of musical piece Yŏngsan hoesang (which is called as ŭmyul 音律or Yŏngsan hoesang in Korea) converted to the title chŏngak of Chosŏn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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