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정악대회의 성격과 의미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Jeongak Contest under Japanes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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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신문에 나오는 정악대회의 전개 양상을 통해 성격과 의미를 살펴보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정악대회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으로 열렸는데, 외형적으로는 서양음악과 대중음악의 확산으로 인하여 정악이 사멸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방안으로 개최되었고 내적으로는 주최 측과 후원 단체들의 자체적인 경비 마련을 위해서였다. 정악대회를 주최한 기관은 중앙에서 경성여자미술학교, 여성휘보사, 중앙기보사, 조선음악협회 등이었으며, 지방에서는 개성고려청년회, 배영학원, 울산정악강습소, 공주정악회, 부산유치원, 동아일보사 논산지국 등이었다. 특히 1927년 경성과 개성, 대구, 김천, 원산, 평양 등지에서 정악대회를 주최했던 경성여자미술학교는 조선음악과의 개설을 홍보하고 학교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정악대회를 수시로 주최하는 등 정악 부흥에 공헌하였다. 그리고 지역에서 열린 정악대회는 중앙의 순회공연도 있었지만, 지역의 기관이었던 정악회, 정악강습소, 청년회, 육영학원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하여 정악 홍보와 기금 마련을 위한 사회운동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또한 대회가 열린 공간도 중앙기독교청년회관, 울산청년회관, 개성좌, 대구 조양관, 개성청년회관 대강당, 백선행 기념관, 부산 공회당, 공주 금강관 등 신식극장이었다. 출연진은 정악에 있어 조선정악전습소, 이왕직아악부, 조선음악협회 소속 또는 출신과 이화여자전문학교, 경성제대, 경성방송국 소속 악사 및 지방의 정악 동호회원과 봉래권번, 동래예기조합 소속의 기생들이었다. 정악대회의 프로그램은 <영산회상> 13곡을 연주하는 <가즌회상>과 가곡, 가사, 시조 등이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정악대회는 공연 종목에 있어 정악 이외에도 판소리, 잡가, 산조, 가야금병창, <승무>, <검무>, 무도, <줄타기>, 서양음악 등을 포함하고 있어 다변화되었으며, 대회가 의미하는 경쟁 구도가 아닌, 종합공연물로 안착이 되어 나갔다.
Abstract
The paper looks into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Jeongak contest through its development described in the newspapers publish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explores what it pursued. Jeongak contest was intensively held from the middle of 1920s to the middle of 1930s. From the outside, the contest aimed to overcome the approaching extinction of Jeongak due to the spread of Western music and popular music, but internally, it was for the hosts and sponsors to raise their own expenses. The host organizations included Gyeongseong Women's School of Art, Yeoseong Huibosa, Jungang Gibosa, and Joseon Association of Music in the central region, Gaeseong-Goryeo Yooth Association, Baeyoung School, Ulsan Jeongak Institute, Gongju Jeongak Society, Busan Kindergarten, and Dongailbo Nonsan Office in the provinces. Especially Gyeongseong Women's School of Art, which held Jeongak contests in Gyeongseong, Gaeseong, Daegu, Gimcheon, Wonsan, and Pyongyang in 1927, contributed to the revival of Jeongak by promoting the establishment of the Department of Joseon Music and regularly hosting Jeongak contests to gather operation funds for the school. There were centrally-hosted tours of Jeongak contest held in the provinces, but the local organizations such as Jeongak Society, Jeongak Institute, youth association, and Yukyeong School also organized their own Jeongak contests as public campaigns to promote Jeongak and raise funds. In addition, the contests were held at new theaters, such as Central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Hall, Ulsan Youth Center Hall, Gaeseong Theater, Daegu Joyang Hall, Gaeseong Youth Center Main Hall, Baek Seonhaeng Memorial Hall, Busan Public Hall, and Gongju Geumganggwan. The performers for the Jeongak contest were performers from Joseon Jeongak Jeonseupso, Yiwanggik Aakbu, and Joseon Association of Music, musicians from Ewha Collage, Keijo Imperial University, and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members of Jeongak clubs in the provinces, and Gisaengs from Bongnae Kwonbun and Dongnae Gisaeng Association. The main programs of Jeongak contest were <Yeongsan Hoesang>, <Gajeunhoesang> (a suite of 13 songs), Gagok, Gasa, Sijo, etc. However, the Jeongak contest had diversified with various kinds of performances including Pansori, Jabga, Sanjo, Gayageum Byeongchang, <Seungmu>, <Geommu>, Moodo, <Jultagi>, and Western music in addition to Jeongak. In result, the contest established itself as a comprehensive performance rather than a competition in its original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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