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중심의 음악회장, 경성(京城) 기독교청년회관
Concert Hall for the People of Chosun: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Hall in G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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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경성의 종로는 조선인들의 중요한 활동공간이었다. 조선인들은 전통과근대의 접경이자 일제하 재조(在朝)일본인들과 명확한 공간 구분이 이루어 졌던종로에서 민족, 사회, 계몽, 문화운동 등의 거점을 마련하였다. 특히 연주공간이필요하던 음악부분에서도 종로는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전공의 양악전문가들이 출현하고 양악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음악회를 누리는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경성에는 음악회를 위하여 건립된 음악당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은 기독교청년회관, 천도교당, 경성공회당 등의 다목적 강당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그 중 경성에서 조선인 중심의 연주장소로 주목받던 기독교청년회관은 1920년대 문화행사의 주축이 될 정도로 음악회를 비롯하여 각종 공연, 강연, 모임 등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어 경성시민들의 문화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연구는1920년부터 1935년까지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음악회 관련 각종 인쇄 자료를 분석하여 당시 조선인들이 음악회 참여를 통해 경험하는 근대 도시의 총체적인그림을 그려 보고, 식민지 상황에서 음악회장이 갖는 양가적인 정치적 역할, 음악이라는 근대적 유행물을 경험하는 조선인들이 근대화에 대해 품는 욕망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Abstract
Jongro of Gyeongseong during the colonial era was an important activity space for the people of Chosun. In Jongro, which was the border of tradition and modernity and had a clear division of space from Japanese living in Chosu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people of Chosun laid the foothold of ethnic, social, enlightenment, and cultural movements. Jongro especially became an important place for music that needed a performance space. With the appearance of western music experts in various majors and the increase of Koreans (people of Chosun) who wished to enjoy western music, the demand for concerts started increasing from the 1920s as well. However, since there was no concert hall built in Gyeongseong at that time, most performances were held in multipurpose auditoriums such as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Hall, Cheondogyo Hall, and Gyeongseong Public Hall. Among them,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Hall received attention as the place of performances for the people of Chosun in Gyeongseong. Various events such as concerts, lectures, and gatherings were held in this hall, which played a pivotal role for cultural events in the 1920s, greatly contributing to Gyeongseong citizens’ cultural activities, and had a tremendous impact on the formation of Korean music culture. This study illustrated an overall picture of modern urban experience through the concert attendance by the people of Chosun at that time, by analyzing different materials printed about the concerts held in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Hall from 1920 to 1935. Especially, this study determined that the concerts in Colonial Chosun strongly reflected the desire of Koreans to change their life or modernize through concerts, as they were not allowed to participate in politics during th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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