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가의 일생을 통해 본 韓末 기업의 성패 요인- 朴琪淙의 일생을 중심으로 -
In Between the Bureaucrat and the Entrepreneur: The Life of Park Ki-Jong and the Particularity of Korean Business in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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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韓末 최초의 기업가 중 한 사람이었던 박기종의 삶을 통해, 지방의 중인출신이었던 그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도입되기도 전인 1880년대에 기업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서는 결과적으로 그가 성공하지 못했던 원인을 확인해 봄으로써, 19세기 말의 자생적 조선인 기업가 집단이 식민지기이후 자본주의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했던 원인도 확인해 보고자 한다. 박기종이 기업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본고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 주목하였다. 먼저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부산포가 상업 및 외래 문물에개방적이었고, 집안 역시 상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일 교역에 참여했던 덕택에 일본인들과의 넓은 교류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그는 대일 업무에 종사하면서 官界와도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특권을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업 활동에 투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반에서 이루어진그의 기업은 혈연, 인척관계로 이어진 지역 객주 집단이 포함된 느슨한 가족 기업의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특징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그의 재능이나 사업적 수완 부족이 아닌,일본인과의 관계가 틀어진 데에 따른 것이었다. 그의 사례는 韓末의 기업가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이식 여부보다, 정계와의 관계, 특히 일본인과의 관계에 더욱 영향력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life of Park Ki-Jong, one of the first entrepreneurpioneers in late Joseon, particularly focusing on his motivation to operate a businesssince 1880, the period still the capitalism was seemingly immature in Korea. Also,this study will shed light on the reason why these Korean entrepreneurs was failedeventually to develop their businesses further in 1900s by reflecting Park Ki-Jong’sunlucky business result. This study found three factors that led Park Ki-Jong to set up his business. First,the childhood experience at Busanpo boomed with commercial activity and foreignculture influenced him to be open to capitalism and modern business system. Second,thanks to his fluency at speaking in Japanese, he could establish extensive partnershipwith Japanese, while having a professional experience as a trader, and an interpreterin diplomatic missions. Finally, his relationship with Korean bureaucrats at Seoul,established during his service as a diplomat, was useful to obtain permissions forcertain monopolized businesses. On the basis of these conditions, his company wasoperated by business partners associated with him by marriage. Paradoxically, his relationship with Japanese was main factor for the collapse ofhis business. His case suggests that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e businessenvironment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was the human network, particularly withJapanese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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