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월당 김상정의 삶과 학행에 대한 연구
A Study on Han Wol Dang Kim Sang Jung’s Life and Schola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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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한월당 김상정의 삶과 학행(學行)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다. 호서의 명문가에서 출생한 한월당 김상정은 남당학파 계열의 유학자로 고조인 한간 김한록과 종증조인 월담 김일주 등을 통해 내려온 호론적(湖論的) 학풍을 가학(家學)으로 계승하였다. 한월당은 삼강과 오상이 인간이 지켜야 할 대륜(大倫)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강 중에는 임금과 어버이를 중히 여기는 충과 효를 우선하고 오상중에는 인과 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그에게는 사람다운 학행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그는 삼강과 오륜의 마음이 왜적과 싸울 수 있는 의리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학행의 근거로 공자의 말을 들어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이 춘추대의라고 언명하고, 선비가 지켜야 할 것은 강상이며 행해야 할 것은 인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의 ‘살신성인’과 맹자의 ‘사생취의’, 주자의 중화와 오랑캐의 분별, 우암 송시열의 직사상, 남당 한원진의 기질의 중요성, 한간의 직의 정신이나 『시경』의 응징정신과 『소학』의 절의정신 등은 그에게 중대한 학행의 실천적 이념과 정신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학행의 근거에 따라 한월당은 단군 기자 이래로 4천년 신성한 덕교(德敎)와 2천 년간 대성한 도학(道學)과 5백 년간 가장 저명한 문명(文明)이 있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왜적이 침범한 이래로 덕교와 도학과 문명이 현저한 문화국인 조선의 자주권을 박탈해 감을 통분해 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학행의 근거에 입각한 춘추의 존양론(尊攘論)을 철저한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과 배일론(排日論)으로 전개하며 포악한 일제에 항거하였다. 한월당은 면장에게 국상을 발표하고 복 입는 일을 물어보며, 애국사상을 써서 면내 게시하려 하였다. 또한 그는 1919년 정월 초하루 부석면 망등산에 올라 망곡하고 성복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로부터 오지와 가슴을 찢어 피로 애국기(哀國旗) 100여자를 쓰고 또한 한월별호를 써서 배일하는 뜻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격문(檄文)을 발표하여 일제를 성토하였으며, 공자의 춘추대의를 천하 만국에 천지와 더불어 종시를 서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한월당은 고종이 시해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더욱 분개하여 왜적에게 굽히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1919년 정월 14일에 이어서 민중의 봉기를 재촉하는 혈서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을미년 8월 국모의 해를 당한 것과 경술년 7월 전국이 합방된 것과 무오년 섣달의 군부의 피살된 것 등 3대 의리로서 일제의 죄를 물으며 힐책하고, 왜왕에게 굴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세금도 납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와 같이 한월당이 인식한 참된 현실이란 위정척사하고 절의정신을 실현하는 세계이며, 그것은 그가 일생동안 흠모했던 성현과 선대가 추구해왔던 춘추의 존양론(尊攘論)과 대명의리(大明義理)에 입각해 있으며, 그의 학행의 근거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우국애민에 앞장서서 실천한 민족지사로서 일제의 온갖 회유와 탄압에도 절대로 의리를 굽히지 않고 서산지방에 3.1운동을 유도하며 항일투쟁을 선도하였던 것이다.
Abstract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life and the scholarship of HanWolDang(寒月堂) Kim Sang Jung(金商釘, 1852∼1954, he rein after refer to as HWD). He was born in noble family in HoSeo(湖西). His great-great-grandfather is HanGan KimHanRok and His great-grandfather is WolDam KimIlJu. They are a man of Nam Dang School. So they inherited with the spirit of the Nam Dang School by the tradition of the house. After the fall of the Korean Empire In 1910, He lived in the secluded countryside. Since his nation was failed, he was very sad. Therefor He was a hermit. And He almost did not come out of his house. A few years later, On December 19, 1918. He heard the news that Emperor GoJong(高宗, 1852~1919) died. After that, He fought against the illegal invaders of Japan. So as to resist invaders, He wrote in his blood and refused to pay taxes. So he spearheaded the resistance movement. HWD saw SamGang(三綱, the three basic principles in human relations) and OhSang(五常, the five constant virtues) to human great-ethics to be observed. He said, “In SamGang, The first is Chung(忠) and Hyo(孝). This is what we value the king and parents. And in OhSang, This is to emphasize that In(仁) and Eui(義).” He thought that is the basis of Humanity. Also he quote evidence the words of Confucius. Confucius said, “Sino culture(中華) will increase to defeat the barbarians(夷). This is Great ambitiousness of Spring and Autumn Annals(春秋).” Then he emphasizes the following. SunBi must keep GangSang(綱常, SamGang and OhSang). And SunBi must practice In Eui(仁義). Therefore, the background of the philosophical HWD is thoughts of Confucius, Mencius, Zhu Xi, UAm SongSiYeol, NamDang HanWonJin, HanGan KimHanRok etc. So, HWD Said, “If a Great-man(大丈夫) should focus on Justice to profit, the laws of nature to Success or failure, eternity to lifetime.” According to this academic background, HWD is thought that Great-ethical background to the exceptional civilization. It began in 4000 years have passed since Dan Gun(檀君) and Gi Ja(箕子). But the Japanese were invading these civilizednations of the Empire by force. So HWD thought it was very unfair this do it. So he set up in WiJungChukSaRon(衛正斥邪論) and BaiIlRon(排日論) based on JonYangRon(尊攘論). And he spear headed the anti-Japanese struggle. Continuing his academic ideals he should carry with pridere presenting the ethnic culture consciousness. It is JonWangYangYi(尊王攘夷) and DaeMyungEuiLi(大明義理). Therefor He was a pioneer practice prior to the country concerned and loving people. And He did not ever give in all kinds of repression and appeasement of Japan. He contributed greatly to finding a free and independent life of ethnic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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