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역 고구려와 발해의 불교 사찰 -고구려와 발해의 사찰 발굴 복원 一試攷-
A Study on Buddhist temples in Goguryeo and Balhae in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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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북한지역 고구려와 발해의 불교 사찰을 발굴하고자 다소 실증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후대의 자료도 적극적으로 포함하여 시론적으로 천착한 연구이다. 북한지역에 고구려 사찰로서 가장 먼저 건립된 것은 393년 광개토대왕이 평양에 창건하였다는 9사인 듯하다. 고려의 건국시조인 동명성왕과 관련이 있는 평양의 영명사와 정릉사, 고구려의 당간지주를 남긴 평양의 중흥사와, 고구려 승려 玄旭이 503년에 창건하였다는 평남 평성의 안국사, 한국의 최초의 결사도량인 東寺 등도 역시 고구려 사찰이었다.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하고 머물렀던 초문사와 이불란사도 평양천도후 평양에 흥국사와 흥복사로 개명하여 다시 창건되었다. 고구려 말기의 승려 보덕과 그 제자가 창건한 반룡사․영탑사․금동사․보덕암 등도 고구려 사찰이었다. 그리고 해외 구법승인 道登이 세웠다는 白鹿薗寺, 쇼토쿠 태자가 바닷가에서 수습하였다는 불상의 봉안처인 光明寺 등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고구려 사지로 알려진 평원군 대성구역의 上五里 사지와 淸湖里寺 사지 등 10여소와, 문헌에 보이고 있는 평안도 안주군 칠불산 칠불사와 황해도 구월산 연등사 등도 역시 고구려 사찰이었을 것이며, 후대까지 대부분 존재했을 개연성이 크므로 북한지역 발해 사찰로 추정된다. 현재 북한지역의 발해 사찰로 알려진 것은 개심사와 오매리 사지, 청해토성 내부 사지이다. 본고에서 후대의 문헌에 보이는 함경남도 이원군 대덕산 雲興庵(현 정광사)과 평북 태천군 양화사 등은 발해 사찰로 추정되므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해의 승려는 이미 알려진 북한지역의 함경도 개심사의 大圓외에 함남 이원 운흥암을 창건한 日信도 발해의 승려였던 듯하다. 그리고 고려 태조대 래투한 載雄과,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志元 등은 고려의 발해유민 승려이지만 래투이전에 발해의 사찰에 머물렀을 것이다. 향후 실증적이고 정밀한 검토가 이루어져 고구려와 발해의 불교 및 사찰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Abstract
This paper may have some empirical problems in excavating Buddhist temples in Goguryeo and Balhae in North Korea, but it is a methodically shallow study, including further data. The first Koguryo temple to be built in North Korea seems to be the ninth of its kind to be built in Pyongyang by King Gwanggaeto in 1933. Other Goguryeo temples included Yeongmyeongsa Temple and Jeongneungsa Temple in Pyongyang, which were related to King Dongmyeong, the founding founder of Goryeo, Jungheung Temple in Pyongyang, which left Goguryeo's Tangganjiju, Anguk Temple in Pyeongseong, South Pyongan Province, which was founded in 503, and Neptune, Korea's first Buddhist monk. Chomunsa Temple and Ibulansa Temple, which first introduced Buddhism to Goguryeo, were also renamed as Heungguk Temple and Heungboksa Temple in Pyongyang and founded after moving the capital to Pyongyang. Bannyongsa Temple, Yeongtapsa Temple, Geumdongsa Temple, and Bodeokam Temple which were built by Bodeok, a Buddhist monk of the late Goguryeo period, and his students, were also Buddhist temples of Goguryeo. And for the first time, it was discovered that there were Baekrokwonsa Temple. It was built by Dodeung Buddhist monk evangelized from abroad, and the statue of the Buddha of Kwangmyungsa Temple that Prince Shotoku had recovered from the beach. In addition, about 10 other temples, including the Shangri-ri-sa Temple and Cheongho-ri Temple in the Daesung district of Pyongwon-gun, known as the Goguryeo temple site, and the Chilbulsa Temple in Anju-gun, Pyeongan-do, and Yeondeungsa Temple in Gewolsan Mountain, Hwanghae-do would have been Buddhist temples in North Korea since it highly probable that most of them existed untill generations, so it is believed to be a temple in Balhae, North Korea. Currently, the temple, known as Balhae temple in North Korea, is located in Gaeksimsa Temple, Omari temple site, and temple site Cheonghae fortress. Unheungam (currently Jeonggwangsa Temple) of Daedoksan Mountain Yieon-gun in South Hamkyong Province and Yanghwasa Temple in Taecheon-gun in North Pyongan Province, as seen in the later literature and others are assumed to be Balhae temples, so they will have to be added. In addition to a Buddhist monk Daewon of Balhae of Gaesimsa Temple in North Hamkyung-do, a Buddhist monk in Balhae Illshin who founded the Unhengam Temple, also evangelized people in Unhengam Temple, a Buddhist temple in Balhae, North Korea. It is hoped that empirical and precise examinations will be maid in the future, so that the entirety of Buddhism and Buddhist temples in Goguryeo and Balhae are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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