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혼례의 사례와 그 의미
The cases and meanings of royal wedding ceremony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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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 왕실 혼례의 주요한 사례들을 개관해 보았다. 왕실 혼례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다양한 지위에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는 점이다. 세자의 신분이 가장 흔할 것처럼 보이나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세자의 신분으로서 세자빈을 맞이하는 경우도 적었다. 오히려 왕자의 신분으로 있다가 정변의 영향으로 왕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선전기에는 왕자의 난이나 계유정난과 같은 왕실의 정변뿐만 아니라, 예종이나 성종의 즉위에서 볼 수 있듯이 후계자 계승에 많은 변수들이 있었다. 16세기 왕실 혼례의 경우에도 왕실의 후계자 계승을 둘러싸고 많은 변수들이 있었다. 중종반정이나 왕실 방계에서 즉위한 선조의 사례에서 보듯이, 왕세자의 신분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왕세자빈을 맞이한 후 왕위에 오르는 전형적인 사례가 오히려 이례적이었다. 특히 16세기에는 『주자가례』가 급격히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왕실 혼례에서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친영 의식이 강화되어가는 점을 주요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왕실 혼례식은 그 틀을 잡아가면서 정형화되어 가고 있었지만, 시기별로 변화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현존하는 가례도감의궤를 통해 조선후기 왕실 혼례의 절차와 혼례행렬 등 화려하고 엄숙한 혼례 모습을 접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was written to overview the history of royal wedding in Joseon dynasty. First of all, kings of Joseon had their royal wedding ceremony in various status. Although the status of the crown prince seems to be the most common, there’s only few cases because eldest legitimate son(嫡長子) rarely succeed to the throne. Rather it was more often a prince and became a king under the influence of political upheaval.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ere were many variables in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as seen from King Yejong or King Seongjong, as well as royal coups such as the Prince’s Rebellion and Gyeyujeongnan(癸酉靖難). In the 16th century, there were many variables surrounding the succession of the royal heir. As seen in the case of King Seonjo or King Jungjong, the typical case of ascending the throne after receiving a successor class as a crown prince and greeting the crown princess was rather unusual. Especially in the 16th century, owe to the rapid spread 《Jujagarye(朱子家禮)》, Chinyeong(親迎), which is bridegroom personally inducting the bride into his home, became the general trend not only in royal weddings but also in the private sector. Royal wedd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becoming more formalized but it also changed from time to time. In particular, the existing Garyedogam-uigwe(嘉禮都監儀軌) provides access to splendid and solemn royal wedding ceremonies such as wedding procedure and wedding procession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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