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代 禁標의 설치와 도성 경관의 변화
Study on the Prohibited area installation and Changes in Capital’s Cityscape during Yeonsangun’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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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연산군 대 시행된 도성 내 금표 설치와 그로 인한 경관 변화를 살펴보았다. 연산군은 지대가 높은 곳에서 후원을 내려다보거나, 후원의 소리를 듣고 외부에 전파하는 행위를 막고자 했다. 따라서 후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과 후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의 출입을 금지하고 건물을 철거했다. 이러한 기조는 갑자사화를 전후하여 급격히 확대되었다. 후원과 인접한 도성의 동북부 지역부터 시작된 출입금지 및 강제철거는, 도성 전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연산군은 출입금지 및 강체철거 지역에 금표를 설치했다. 금표 설치는 출입금지 및 강제수용ㆍ철거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금표가 설치된 지역은 사실상 궁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연산군의 유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중종반정이일어날 즈음 도성은 청계천 주변의 낮은 지대, 오늘날 퇴계로와 인접한 지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금표로 편입되었다. 금표가 설치된 지역은 연산군의 자의적 판단 하에 거주 및 건물 보존이 이뤄졌으며, 그 외는 강제수용 및 철거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는 새로운 건물 및 담장축조 등의 토목공사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성을 떠났고, 반대로 많은 지방 사람들이 토목공사의 인력으로 차출되어 상경했다. 도성의 경관은 급격히 변했고, 도성 내의 거주 및 유동 인구 또한 빠르게 변했다. 연산군 재위 후반부의 도성 거주민들은 앞날을 예상할 수 없었다. 오늘 도성에 살고 있지만, 내일은 집이 강제 수용되어 철거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안고 살아감과 동시에, 토목공사에 차출된 사람들과 취홍원 등으로 뽑힌 사람들의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마주해야 했다. 사회 전반에 자리한 불만은 결국 反正의 추동력이자 승인의 요인으로 작동했던 것이었다.
Abstract
From the beginning of his reign, Yeonsan-gun expanded its patronage and installed a prohibited area. The expansion of back garden of the palace started from the northeastern part of the city. Before and after the Gapjasahwa, the installation of gold stamps in the city walls expanded rapidly. Demolition of private houses was carried out on a large scale, and people were driven out. Prohibited area within the city wall was excluded from the southern part of Cheonggyecheon to the bottom of Namsan Mountain, and most of the city was incorporated into the Prohibited area. Such a sudden establishment of prohibited areas caused house demolition and social unrest. The people of the city lived with anxiety that their houses might be demolished. Ultimately, this anxiety led to support for Jungjong 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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