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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서울 편중 人事와 正祖의 地域 인재 선발 ―正祖代 人事 관련 傳敎文을 중심으로

The personnel weighted towards Seoul in the 18th century and Jungjo (正祖)’s several policies for selecting the local tal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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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8세기에는 조선 사회의 각 부문에서 서울과 지방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발달된 서울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고와 문화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다른한편 지방민을 소외시키는 사회구조가 갈수록 공고해져 가기도 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 소외된 지역 문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인사상의 지역차별 구조를 혁파하고자 했던 정조의 일련의 정책을 살펴보았다. 일부 京華世族 가문에 집중되어가는 人事의 서울 편중을 극복하고자하는 노력은 이미 숙종대부터 있어왔지만, 그러한 노력이 실제적인 결실을 맺은 것은 정조대에 이르러서였다. 정조는 서울 지역 문인들의 주요한 관직 진출 통로로 이용되어왔던 庭試의 비중을 축소하는 한편, 外方 別試 및 賓興科를 적극 활용하여 소외된 지역 문인들의 문과 급제 비율을 높였다. 또한 賢者를 등용하는 관리 등용의 원칙을 지키면서, 先代에 通淸의 자격을 얻었던 지역 인사의 후손을 淸要職에 임명함으로써 門閥이 낮음을 내세워 지방선비들의 청요직 등용을 반대하는 논리를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정조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인재 등용의 지역 간 격차는 정조대에 와서 눈에 띨 정도로 완화될 수 있었다. ‘도시’와 ‘지방’간 격차가 날로 심화되어 가는 지금, 古典을 창조적으로 變用했던 正祖의 지혜와 반대자를 설득하는 소통의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Abstract

This essay is to analyze Jungjo 正祖’s several policies for selecting the local talentd people. Since the late Chosun 朝鮮 dynasty, more and more the government official had been come from the seoul, the capital of Chosun. Thus the socio-economic and cultural gap between seoul and other regions in Chosun had seriously increased. Jungjo 正祖 refined several policy to solve this problem. First, He reduced the importance of the Jungsi 庭試, that is an irregular test holding in palace in Seoul, when have a happy event in the state. So the local people have little acquaintance with it and did not engage it. Instead of that, He carryed out a special examination for local student of Oibang Byeolsi 外方 別試more than ever before. Second, He created a new exam of Binhenggua 賓興科, that is a system recommending a good and smart student lived in the country, but he changed it appositely to the case and selected them for himself not through recommendation but by examination. Third, after a series of tests, he chose local talented people of good family first in order to prevent a knot of established bureaucrat from disconfirming new face come from local and country. By implement a series of this new measures, Jungjo 正祖 reduced regional disparity and could seek balanced development between regions without any particular confrict. I hope to learn it from Jungjo 正祖 how to transform and use a classical scholarship, and to be able to solve our own regional disparity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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