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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초기 인겸계의 왕위계승과 분열

The Throne Succession and Division of the In-gyeom Lineage in the Early Period of Late Silla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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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원성왕의 첫째 아들 김인겸은 원성왕 원년(785)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원성왕 7년(791)에 사망하여 즉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인겸의 4명의 아들 김준옹(소성왕) · 김언승(헌덕왕) · 김수종(흥덕왕) · 김충공(선강태자)은 모두 국왕으로 즉위하였거나 왕위계승자로 공인되었다. 김인겸(혜충대왕)은 소성왕에서 애장왕 · 헌덕왕 · 흥덕왕· 희강왕 · 민애왕대까지 5묘에 부묘되었고, 당시 왕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 김언승은 형인 김준옹이 원성왕의 세 번째 태자로 책봉된 이후 김준옹이 맡았던 재상과 병부령을 이어받아 태자를 보좌하였을 뿐만 아니라, 김준옹의 유고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였다. 김준옹이 왕위를 계승하여 김언승의 왕위계승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김언승은 자신의 정치 권력을 내려 놓지 않았다. 애장왕의 나이가 어려 모후 소성왕비가 섭정을 한다면, 이는 곧 외척 세력의 정치적 등장을 의미했다. 그러나 원성왕대부터 이루어진 왕실 가족의 권력 독점, 권력 장악을 유지한 결과 왕의 숙부인 김언승이 섭정을 하게 되었다. 애장왕의 친정은 인겸계 내에서 왕위를 차지한 소성왕 직계와 인겸계 방계 왕족들 간의 분열과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였다. 결국 이 갈등과 대립은 김언승과 제옹이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대 초기 정치에서는 중대와 달리 외척들의 정치 참여가 두드려 보이지 않는다. 이는 원성왕때부터 왕실친족집단원 중심의 정국 운영과 하대 초기 왕위를 독점한 인겸계의 근친혼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원성왕이나 김인겸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졌을 때 하대 초기 왕실은 분지화된 가계를 단위로 분열하고 대립하였다. 인겸계의 근친혼도 국왕 직계와 방계 왕족 간의 갈등을 불러오고 다른 진골귀족과 왕실을 고립시켰다.

Abstract

King Wonseong(元聖王)’s first son, Kim In-gyeom(金仁謙), was installed as the crown prince in the first year of King Wonseong(785), but he died in the seventh year of King Wonseong(791) and failed to be a king. However, all four sons of his either ascended the throne or were recognized as successors to the throne. In five shrines from King Soseong(昭聖王) to King Minae, ancestral rites were held for Kim In-gyeom (= Hyechungdaewang). Kim In-gyeom was the spiritual center of the royal family at that time. After his older brother, Kim Joon-ong, was appointed as the crown prince of King Wonseong, Kim Eon-seung(金彦昇) assisted him serving as Jaesang(宰相) and Byeongburyeong(兵部令), too. It also played roles in preparing for Kim Jun-ong’s possible death. Kim Eon-seung’s chances of succeeding the throne decreased as Kim Jun-ong succeeded to the throne, but Kim Eon-seung did not give up his political power. Unlike the middle period,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maternal relatives was not noticeable in the early period of late Silla dynasty. From the reign of King Wonseong,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royal family’s monopoly of power and seizure of power continued. As a result, King Aejang(哀莊王) was crowned at a young age, but the king’s uncle, Kim Eon-seung, ruled as regent instead of the king’s mother, Mrs. Gyehwa. King Aejang’s family home caused division and political conflict between the immediate family of King Soseong who took the throne within the In-gyeom lineage and the collateral royal families of the In-gyeom lineage. Eventually, this conflict and confrontation ended with Kim Eon-seung and Je-ong killing King Aejang and usurping the 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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