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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朝에서의 御史臺 奏彈에 대하여

A Study on the Petitions for Impeachment by the Southern Dynasties Censorates: From the Perspective of Document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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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奏彈은 御史臺가 신료들의 불법이나 비위를 彈劾하고 그에 대한 처벌을 황제에게 청하기 위해 작성한 上奏文이다. 이 문서는 당시 문서행정에서 사용된 上言文書로서의 위상, 내용상의 특징, 보고 방식, 그리고 그 후속 조치 등의 방면에 있어서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 문서는 오직 황제만을 受信대상으로 하였다. 奏彈 외에 황제에게만 올릴 수 있는 문서는 尙書의 奏事가 유일했다. 즉 황태자, 황태후, 태황태후에게는 이러한 ‘奏’ 계통의 문서를 올릴 수 없었다. 奏彈의 작성과 보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 奏彈은 御史臺가 被劾者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게 된 경위, 구체적인 조사 내용의 열거(사건 관련자들의 증언 청취가 포함됨), 被劾者의 犯法에 대한 확정, 被劾者의 비리에 상응하는 처벌의 건의(免所居官, 削爵土, 付廷尉) 등으로 구성된다. 어사대는 某種의 인물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奏彈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어사대는 불법이나 비위가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 감찰을 진행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奏彈을 작성했다. 어사대가 특정 인물을 탄핵하는 奏彈을 작성했다면 이는 그 인물의 비리가 사실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어사대에 의해 탄핵된 인물은 이미 그의 비리가 확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남조에서 어사대 이외의 다른 官司나 신료, 심지어 황제조차도 어사대가 올린 奏彈 내용의 사실 여부를 문제 삼은 적은 없었다. 어사대의 奏彈은 그 보고 방식에 있어서 다른 上言문서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같은 奏 계통의 문서인 尙書의 奏事가 門下의 評議를 거치고 황제에게 보고된 것과 달리 어사대의 奏彈은 이러한 절차가 생략되었다. 게다가 어사대에서는 사안이 시급하고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그 장관인 御史中丞이 직접 奏彈을 휴대하고 御前으로 나아가 황제에게 보고할 수도 있었다. 이는 奏彈이 보고되는 과정에서 被劾者 및 被劾者와 결탁된 권력자의 개입이나 농간으로 인해 황제에게 전달이 지연되거나 내용의 의도적 왜곡, 은폐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 생각된다. 또한 이같은 방식은 어사대가 수행한 감찰활동의 한계와도 관련되어 있다. 어사대는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황태자 이하의 불법과 비리를 糾察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비리 혐의가 있는 당사자를 임의로 소환하거나 체포, 구금하여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대신 어사대는 사건과 관련된 문서, 또는 사건 당사자와 관련된 관계자들의 증언을 청취하여 감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어사대는 風聞에 의거하여 奏彈을 작성하는 것도 허락되었는데 이것은 어사대가 직접 사건 당사자를 조사할 수 없는 제약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사실 어사대는 상당히 제한된 조건하에서 주탄을 작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서는 바로 황제에게 보고되어야 하므로 어사대는 그 작성에 있어서 더욱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尙書의 奏事가 실무자에 의해 작성된 것과 달리 어사대의 奏彈이 장관인 御史中丞에 의해 작성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奏彈 내용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보증하기 위해 어사대의 首長이 직접 이 문서를 작성하고, 황제를 설득하기 위해 대면보고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사대의 奏彈이 이처럼 문제없이 황제에게 보고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어사대의 의도대로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어사대는 刑律을 적용하여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다. 刑律의 적용과 집행은 廷尉의 소관이었다. 그리고 被劾者를 廷尉에게 넘길지의 여부는 황제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어사대의 주탄이 실질적인 규제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비준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황제는 어사대가 건의한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처벌을 내리거나, 被劾者의 비리를 용서하고 불문에 부치기도 했다. 설령 어사대의 건의에 따라 被劾者를 일단 처벌했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사를 다시 重用하기도 했다. 게다가 어사대가 奏彈을 통해 탄핵한 인물들 가운데는 정작 황제의 측근이나 寵臣들은 빠져 있었다. 국정운영이 비교적 건전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양 무제의 치세(502~549)도 마찬가지였다. 어사대의 奏彈이 황제에 의해 채택되고, 어사대가 기대한 수준만큼의 처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황제가 어사대에게 직접 감찰을 敎唆한 경우였다. 황제는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를 갖는 것으로 판단되는 인물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어사대를 동원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남조의 황제지배체제하에서 감찰기구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어사대의 존재이유는 황제의 독재권력을 지탱하고 옹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奏彈에 부여된 문서로서의 위상 및 그 신속한 보고의 제도적 보장도 바로 이를 위한 안배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어사대의 주탄이 문서행정에서 수행한 기능을 감안하면 이 문서는 사법적인 판단을 담은 법률문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징계의견서’로서의 속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古文書學의 관점에서 남조의 주탄문이 갖는 사료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남조의 주탄문이 실물로서 전하지는 않지만 그 양식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들이 여러 문헌들에 ‘著錄’되어 있다. 隋唐에서도 어사대의 문서로서 奏彈이 계승되었으며 『公式令』에는 ‘奏彈式’이 규정 되었다. 그런데 隋唐의 奏彈式은 현재로서는 미상이다. 그 양식을 반영한 문장이나 실물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조의 주탄문은 남북조에서 수당으로 이어지는 주탄문서 양식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고, 隋唐 奏彈式을 복원함에 있어서도 유용한 참고가 된다.

Abstract

奏彈是御史臺為彈劾臣僚們的非法或違法行為並對其處罰向皇帝上奏請求而呈上的奏折. 該文書作為當時文書行政上使用的上言文書, 在其定位·內容特征·報告方式以及先後措施等方面具有特別的政治上的意義. 該文書是接收對象僅為皇帝本人. 除了奏彈以外, 可上呈給皇帝的文書只有尙書的奏事這一種. 也就是, 不可向皇太子·皇太后及太皇太后呈上這類“奏”系統的文書. 奏彈的書寫與報告具有如下政治性意義. 奏彈由御史臺對被彈劾者的進行監察的原委·具體調查內容的列舉(包括事件相關人員證言的聽取)·被彈劾者犯法的確定·就應被彈劾者腐敗行為處罰的建議(免所居官·削爵土·付廷尉)等組成. 御史臺並非為就某個人物的舞弊疑惑而撰寫奏彈. 御史臺對非法或有不正當行為之嫌的情況進行監察, 且如被判明是事實, 為將其報告給皇帝而書寫奏彈. 御史臺若書寫有關彈劾特定人物的奏彈, 這是以該人物的舞弊行為為前提. 也就是說被御史臺彈劾的人物, 其舞弊行為已成定局. 實際上在南朝除了御史臺以外, 其他官司或臣僚, 甚至是皇帝也未對御史臺呈上的奏彈內容是否屬實提出異議. 御史臺的奏彈在其報告方式上, 與其他上言文書有較大的差異. 與類似“奏”系統的文書——尙書的奏事經過門下評議上奏給皇帝不同, 御史臺的奏彈省略了這一流程. 再加上御史臺若認為情況緊急且嚴重, 其長官御史中丞可親自攜帶奏彈前往御前上奏皇帝. 可將其視為防止在行奏彈的過程中, 因被彈劾者及與被彈劾者勾結的權貴的介入或欺詐導致延遲傳達給皇帝或內外被故意歪曲及遮掩的措施. 此外, 這一方式與御史臺執行的監察活動有關聯. 御史臺無論是中央還是地方, 均可對皇太子以下的非法與舞弊行為進行糾察. 不過, 對於有舞弊行為之嫌的當事人卻沒有隨意傳喚或逮捕或拘禁並進行調查的權限. 不過, 御史臺可查看與案件相關的文書或聽取案件當事人相關人士的證言並進行監察. 允許御史臺可根據風聞行奏彈,這應該是為與御史臺無法親自調查案件當事人的限制相抵消的措施. 其實御史臺是在有局限性的條件下行使的奏彈. 而且該文書還要直接上奏給皇帝, 所以御史臺在撰寫時不得不更加謹慎. 與尙書的奏事由實際執行人員書寫不同的是, 御史臺的奏彈是由其長官御史中丞撰寫來看, 應該正是源於這一情況. 為保證奏彈內容的事實性與客觀性, 御史臺的首長親自撰寫文書, 並為說服皇帝需要面見皇帝上奏. 但即使如同御史臺的奏彈一樣順利地上奏給皇帝, 仍有不少未按御史臺意圖處罰的情況. 這是因為御史臺沒有適用刑律權限. 刑律的適用與執行歸廷尉所管. 再有被彈劾者是否要交付廷尉取決於皇帝的選擇. 御史臺的奏彈為在實質上發揮約束力, 務必需要皇帝的準奏. 皇帝也有比御史臺建議的水平低一個等級的處罰或對被彈劾者的舞弊行為做出寬容處理對其既往不咎. 即使按照御史臺的建議對被彈劾者進行處罰, 但不久後還會對該人士進行重用. 此外, 御史臺通過奏彈彈劾的人物中, 皇帝的親信或寵臣卻逃脫了被彈劾的命運. 即使國政運營評價頗佳的梁武帝治理天下時(502~549)也如此. 御史臺的奏彈被皇帝採納, 且按御史臺所期待的程度進行處罰的情況, 大部分應該是皇帝親自指示御史臺展開的監察. 皇帝為合法地除去自認為對自己圖謀不軌的人物動員了御史臺. 通過這一事例, 可分明了解到在南朝的皇帝統治體系中監察機構作用的局限性. 御史臺存在的理由是將重點放在支撐皇帝的獨裁權利, 而賦予奏彈的作為文書的定位及其迅速報告的制度性保障也是為此做出的安排. 如上所述, 考慮到御史臺行使的奏彈在文書行政中執行的功能方面, 該文書與其說是包含司法判斷的法律文書, 不如說帶有一種較強的“懲戒意見書”的屬性. 另外從古文書學的觀點來看, 南朝奏彈所具有的史料性價值與歷史意義則不可低估. 南朝的奏彈實物雖未傳下來, 可推測出其格式的文章在多個文獻中被“著錄”. 在隋唐時代, 作為御史臺文書的奏彈也被繼承下來, 而在『公式令』中被規定為“奏彈式”. 不過隋唐的奏彈式目前還不詳. 因為體現出其格式的文章或實物未能傳下來. 因此, 南朝的奏彈可作為理解從南北朝延續到隋唐時代的奏彈文書格式的發展過程, 並復原隋唐奏彈式等方面值得參考的部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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