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초 조선 여인들의 명궁에서의 삶
Early Ming Dynasty, Joseon Women’s Life in the Ming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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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명(明)과 조선(朝鮮)은 폐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나라로 무척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신(使臣)들의 왕래를 허락한 것 외에는 양국 모두 서로간의 왕래를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본고는 명초 여성 이주 연구의 일환으로 조선의 공녀에 착안했다. 이 시기 여성들의 대규모 이주라고 할 만한 것은 명이 건국 초기에 명 황제가 조선에게 여성의 진헌을 강요했던 ‘공녀(貢女)’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의 영락제(永樂帝)와 선덕제(宣德帝)는 그녀들을 자신의 후궁(后宮)으로 삼기 위해 혹은 개인의 유희를 위해 조선에 7차례에 걸쳐 처녀를 강요하였으며, 그 결과 7차례에 걸쳐 총 114명의 조선 처녀들이 명 황궁(皇宮)에 진헌되었다. 본문에서는 명초 조선 공녀들의 상황과 후궁과 집찬녀(執饌女) 등을 중심으로 명궁(明宮)에서의 생활 흔적과 그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인신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결국 ‘어려지란(魚呂之亂)’과 ‘순장(殉葬)’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공녀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그녀들의 비운의 삶을 애도하였다.
Abstract
Although the ‘Ming(明)’ dynasty and ‘Joseon(朝鮮)’ dynasty shared a great deal in common, both countries strictly restricted their visits to and from each other, except for allowing official envoys to come and go. The large-scale migration of women during this period is considered to women were sent to the Ming Court as tribute. Especially Emperor ‘Yong-Le(永樂)’ and ‘Xuan-De(宣德)’ put pressure on Joseon tribute virgins seven times, and make them concubines or for personal entertainment. As a result, a total of 114 Joseon maidens sent in tribute to the Ming Palace. In this paper, I focused on the situation of Joseon women at the early Ming dynasty court and the trace the nature of life in the Ming palace on the Korean concubines and ‘Jip Chan Nyeo(執饌女)’. Finally, I looked at the situation of women who had to end their lives with ‘Catastrophe of Eo-Ryeo(魚呂之亂)’ and ‘Sacrificial Burials(殉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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