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대 世子와 明 帝女의 혼인 논의와 그 정치적 맥락
Revisiting the Discussion on the Marriage between Chosŏn's Crown Prince and Ming Emperor's Princess in King T'aejong's Reign of Early Chosŏ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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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초기 태조대와 태종대에, 조선 왕실과 명 帝室 사이의 혼인 논의가 진행된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연구가 미진하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해방 이후의 한국사 연구가 근대국민국가 역사학의 관점을 바탕으로 고려후기 고려와 몽고의 관계를 최대한 “자주적”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원 제실과 고려 왕실의 혼인 관계였다는 사학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선초 태조대와 태종대 명 제실과의 혼인 논의는, 공민왕대 이후에서 鮮初까지의 “대외관계”를, 元을 중심으로 설정되었던 동아시아의 광역적 통치질서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과정과 명에 대한 조선의 “사대”가 지니는 “자주성”에 주로 초점을 맞춰 설명해 왔던 통설과는 달리, 그러한 과거의 광역적 통치질서 자체가 이 시기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시 재구성되고 조선도 그 질서에 다시 연동되는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그 의미를 더욱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을 제시해준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조선 태종대 세자와 명 帝女 사이의 혼인 논의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피는 연구이다. 이 논문에서는 혼인 논의가 진행된 태종 3년의 역사적 맥락과 다시 이 논의가 재개되는 태종 7년의 역사적 맥락을 비교/검토하되, 그 사이에 발생한 조선 조정에서의 권력구조의 변화와 두 혼인 논의의 추이를 연동시켜 분석함으로써, 태종대 세자와 明 황제 딸의 혼사 논의를 보다 맥락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나아가 태조대 조선 왕실과 명 제실 사이의 혼인 논의와도 비교해 그 역사적 의미를 파악해보려 한다.
Abstract
Within the historical context of post-1945 south Korean historiography where Korean historians began undertaking their sacred mission to rewrite their “own” history of their “own” nation state as an independent and self-contained national history, main stream historiography of Chosŏn history has largely overlooked the discussions on the marriage between Chosŏn royal house and Ming imperial house in early Chosŏn and their meanings. Going beyond this nationalist master narrative of the post-1945 south korean historiography, this paper seeks to rethink the discussions on the marriage between Chosŏn's crown prince and Ming emperor's princess in king T'aejong's reign and seeks further to reconsider their meanings within this particular historical context of early Chosŏn where the kings and the Yangban ruling elites continuously represented them in many different ways by recalling and redefining the past of the marriage between Koryŏ royal house and Yuan imperial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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