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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 호남지방의 실정과 관군의 동원실태

A Study on the Mobilization of Government Forces and Circumstances of Honam Area During the Early Imjinwa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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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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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란 초기 호남지방의 관군의 동원 실태와 활동 내용을 당시의 전라도의 실정과 전황의추이에 따라 동태적으로 세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란 극복에 있어서 호남 관군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한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또한 조선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란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 전쟁을 수행할 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다행히, 당시 왜군이 전라도로 공격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라감사 이하 지방의 행정과 군사지휘체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여기에 일부 지역 사족과 수령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민심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이에 따라전라도에서는 대규모 관군이 동원되어 근왕과 호남방어를 위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4월 말경 감사 이광에 의해서 8천의 근왕병이 소집되어 공주까지 북상하였다가 회군하였고, 이후 다시 북상한 4만의 근왕병은 6월 초 용인전투에서 왜군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 무너졌다. 그뒤 병사 최원이 6월 중순에 2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시 근왕을 위하여 경기도로 북상하여 활동하였으며, 왜군의 호남공격이 저지된 뒤에는 권율에 의하여 대규모의 관군이 동원되어 경기도로 북상하여 행주대첩을 거두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이 전라도를 향하여 공격해 오기 시작하였다. 이 때 감사 겸 순찰사인 이광(李洸)은 전라도 각 고을의 관군을 동원하여 웅치(熊峙)․이치(梨峙)․전주(全州)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고, 진산․용담․진안․장수지역으로부터 금산․무주의 왜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등 지속적인 작전을 전개하여 왜군의 호남침공을 스스로 저지하였다.

Abstract

During the early Imjinwaeran the Jeolla province like other provinces was not also prepared for the war and experienced the big agitation of civilians. Fortunately Japanese troops did not directly attack the Jeolla-do and the officials and ruling class(Yangban) of the area could keep the orders of administrative and military control system with the help of civilians. This was the main reason that the province could mobilize a great scale of government forces to stop the advance of Japanese troops. In the end of April, 1592, the governor of Jeolla, Lee Kwang advanced about eight thousand royal forces that he mustered up to north bound but withdrew. And in early June he again went to the north with forty thousand royal troops to participate in Yongin Battle but was defeated brutally by Japanese forces. After the defeat, a general Choi Won, with twenty thousand soldiers, again moved to the Gyeongki province and took an active part in several battles, and after stopped the Japanese troops in Jeolla he took a major part in Haengju Victory with the general Kweon Yul who led a great number of government forces. Meanwhile the War extended a long period time the Japanese forces began to attack the Jeolla province. The governor of Jeolla, Lee Kwang, however, stopped the Japanese advances to Jeolla by appointing the general Kweon Yul as chef-of-staffs and mobilizing government troops in every villages and towns in the province with the help of leadership of the areas. They drove the enemy back in Ungchi, Echi, Joenju, Kumsan, and Muju. Thus, in the early Imjinwaeran, the grand-scale of government forces mustered from every villages and towns in the Jeolla province kept the Honam from the hands of Japanese invaders and made the province a major bastion of the country. The negative evaluation in the role of the government forces in the early Imjinwaeran, therefore,should be reviewed and made just reapprais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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